《강하고 터프하고 우악스러운 것과 연약하고 부드럽고 예쁜 것을 각각 남, 여와 연결시키라는 문제가 있다면 쉽게 풀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답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질문이지만 요즘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바야흐로 ‘예쁜男, 강한女’, ‘성(性) 역전’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 초식남-알파걸의 트랜스섹슈얼 패션
○ 엉덩이 올려주는 남성 속옷 ‘드로즈’
남성들이 속옷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뱃살을 감추고 가슴 근육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남성용 보정속옷(거들)’을 찾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남성용 거들은 몸매 보정은 물론 하복부에 적당한 긴장감을 줘 일하는데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 몸을 당겨주는 효과가 있어 보폭이 넓어지고 결과적으로 체지방률을 낮추는 다이어트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초식남’(여성적인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 열풍을 타고 70만 장의 판매를 보인 남성용 거들 베스트 상품이 국내에서는 ‘크로스워커’라는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도 비비안, 비너스, 와코루 등 3개 브랜드에서 남성용 거들을 판매한다. 2008년에는 매출이 거의 없었으나 올여름부터 판매량이 증가해 7∼10월 롯데백화점 전 점포에서 900여 장의 남성용 거들이 판매됐다. 남성용 거들을 구매하는 사람은 주로 30대 직장인들이었다. 과도한 업무 때문에 몸매를 돌볼 시간은 없는데 비즈니스 캐주얼이나 정장이 계속 슬림화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 남자들도 원하는 깨끗한 피부
현대백화점에서도 1∼11월 남성 화장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대 남성 27%, 30대 남성은 19% 증가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귀걸이 목걸이 등 남성용 액세서리도 20대에서 14%, 30대에서 9% 성장했다. 이 외에도 아름다운 몸매가 ‘꽃미남’의 필수조건이 되면서 남성들도 다이어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이 주로 애용하던 다이어트 식품이나 몸의 지방성분을 분해해 주는 보디슬리밍 제품도 남성들에게 잘 팔리고 있다.
남성들이 ‘예쁜 것, 아름다운 것’에 관심을 갖는 반면, 여성들은 ‘강한 것, 남성적인 것’을 추구한다. 공부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들을 능가하며 능력과 자신감을 가진 이른바 ‘알파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두 여주인공 덕만, 미실 같은 인물이다.
패션업계에서도 이런 여성들을 겨냥해 신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남성 정장 브랜드인 본(BON)과 여성 슈트를 한정판으로 기획해 11월 6일부터 본점, 잠실점, 노원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남성 정장 브랜드에서 여성 정장을 직접 기획 판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 상품은 자기표현이 분명한 알파걸의 특성을 감안해 곡선 라인이나 주름 패턴과 같은 여성 의류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파워가 느껴지는 직선적인 라인을 강조했다.
이 외에도 과거 예쁜 곡선을 강조해 왔던 여성의 구두에 징이나 지퍼 장식을 달아 강렬하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를 풍기는 상품들도 잘 팔리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성 역전’ 분위기가 시작됐고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며 “유통업체들이 이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제품에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