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투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자신이 사형을 집행한 사형수의 이름과 죄명이 적힌 쪽지였다. 고중렬 전 교도관(79)은 20년간 200여 건의 사형을 집행했다. “형이 집행되면 사형수는 잊혀지지만 집행관들에겐 악몽이 시작됩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세계 사형 반대의 날’ 기념 미사. 고 씨는 미사가 끝난 뒤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최근 자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안타깝다고 했다. “사회에선 사형이 확정될 당시의 극악무도한 모습만 기억하지만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사형수를 지켜보는 교도관들은 형을 집행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미사에는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모니카 수녀의 실제 인물 조성애 수녀도 참석했다. 조 수녀는 “정남규는 늘 고개를 숙이고 다니며 다른 수감자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는데, 그만큼 자기 세계에 갇혀 지낸 것 같다”며 “용서를 빌 기회도 갖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같은 시간, 정남규의 자살에 치를 떠는 사람도 있었다.
부녀자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는 2006년 3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해 자고 있던 세 자매에게 둔기를 휘둘렀다. 둘이 숨지고 막내는 중태에 빠졌다. 증거를 없애려 이불에 불을 놓아 아버지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자살 전 정남규는 “현재 사형을 폐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인생은 구름 같은 것”이란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황 씨는 “(자살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죄를 했다면 이렇게 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제하려 애쓰는 듯했지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신광영 영상뉴스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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