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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어쩌다 이리 팍팍해진거여”

입력 | 2009-11-27 03:00:00


연극 ‘불 좀 꺼주세요’ ‘피고지고 피고지고’,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등을 함께 만든 이만희 작가(55)와 강영걸 연출(66)이 신작을 서울 무대에 올렸다. 이들 콤비가 여섯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은 연극 ‘해가 져서 어둔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디 가오’. 29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해가 져서…’는 이 작가가 30년 전에 쓴 작품이지만 등장인물이 30여 명에 이르는 대작이어서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배우 전무송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경기도립극단을 만나 무대에 오르게 됐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말 목포 인근의 작은 섬마을 갈매도.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던 어촌마을에 어느 날 일본 형사가 들이닥쳐 숨겨둔 군자금을 찾는다는 이유로 조상들의 묘를 파헤친다.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지만 마음씨 좋은 광수를 제주(祭主)로 정해 조상의 원혼을 달래는 당제(堂祭)를 지낸다. 하지만 어선이 난파해 어부들이 목숨을 잃는 등 우환이 생기자 사람들은 광수에게 책임을 돌린다. “왜 다리빙신을 제주로 뽑아야? 딸년도 임자 없는 아그를 임신혀불고 마누라도 지랄병에 걸린 숭악한 놈을!”(경철어멈)

우물가에 모인 동네아낙들은 병에 걸린 광수의 아내를 다그치고, 광수의 말 못하는 딸 순이는 당 입구 오동나무 밑에서 ‘볼일’을 보려했다며 덕석몰이(멍석말이)를 하려 한다. 광수는 “내가 내 정성 다해서 올린 당제여. 원체가 복 없고 운 없는 놈잉께로 만사형통일 꺼라는 생각이야 못혔지만…이 년 미운 마음으로 나를 족쳤으면 하는 것이 이 박복한 놈의 생각이구먼”이라며 대신 덕석몰이를 당한다.

강 연출은 “이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넉넉한 인심으로 사람을 감싸 안는데 ‘해가 져서…’는 사정없이 사람을 물어뜯어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의 시대가 과거이고 등장인물도 지나간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 속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삶의 본질과 최소한 지녀야 할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연극을 발표해온 이 작가는 영화 ‘신기전’ ‘약속’ ‘아홉 살 인생’의 시나리오도 썼다. 4월 경기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초연했다. 최기봉이 무대디자인을 맡았고 이찬우 이승철 김미옥 김종칠 등이 출연한다. 1만∼2만 원. 031-230-344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