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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성원]인터넷 감청

입력 | 2009-11-18 03:00:00


미국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변호사로 나오는 윌 스미스는 국가안보국(NSA) 요원에게 쫓긴다. 극소형 위치추적장치 같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NSA는 스미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눈에 훑는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민주국가가 정보기관을 이용해 개인생활을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절대권력의 상징인 ‘빅 브러더’에 의해 모든 행동을 감시받고 감정까지 통제당한다. 빅 브러더가 사용한 것은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이란 도청기구다.

▷정보화 시대, 개인에 대한 권력의 감시는 소설과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깊숙이 다가와 있다. 에셜론(ECHELON)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의 통신감청협력 체제다. 국제 위성통신을 지상국에서 감청하거나 다른 나라의 지상통신을 첩보위성으로 파악하는 방법으로 지구상에서 오가는 거의 모든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 올 1월에는 미국 국가안보국 정보분석가였던 러셀 타이스가 MSNBC 방송 대담에서 국가안보국이 모든 통신수단을 망라해 ‘모든 미국인’들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사찰활동을 했다고 폭로했다.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이 1998년 패킷 감청장비를 도입하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까지 8대를 운영했으며, 지난해와 올해 23대를 추가 구입해 현재 31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최근 보고했다. 패킷 감청은 초고속 통신망에서 전송을 위해 잘게 쪼개진 데이터 조각(패킷)을 제3자가 중간에서 빼내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패킷 감청을 하면 특정인이 방문한 웹사이트와 검색 결과, 채팅 및 e메일 내용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수사기관이 패킷 감청을 하려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일단 법원의 감청허가서가 떨어지면 특정 회선을 통해 흐르는 데이터를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어 웹서핑, e메일을 한꺼번에 열람할 수 있다. 패킷 감청은 간첩을 비롯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범법자를 적발해내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 남용과 국민 사생활에 대한 기본권 침해가 없도록 통신비밀보호법에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