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0고지 습지 탐방
250종 1차 확인… 생태역사 간직 이탄층도 발견
벌써부터 무분별 채취… 훼손 막을 대책 세워야
한라산 해발 1100m 일대에 형성된 습지는 식물의 보물창고로 불릴 만큼 다양한 희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생성과정이 알려지지 않은 바윗덩어리는 마치 한라산 산신들이 놓은 바둑알인 양 습지 곳곳에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 한라산 보물창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자주땅귀개 설앵초 잠자리난초 애기더덕.
최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인 자주땅귀개가 군락을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봄과 여름에는 잠자리난초, 산제비난 등 희귀 난초가 화려한 꽃을 피운다. 신용만 전 한라산국립공원 자문위원은 “한라산 특산이거나 희귀식물이 모여 있는 집합소나 다름없다”며 “조금씩 습지식물 분포가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무분별한 채취가 이뤄져 훼손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 습지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를 이루는 1100고지 탐라각휴게소 동쪽지대에 포진했다. 이스렁오름(해발 1352m), 쳇망오름(해발 1354m), 볼래오름(해발 1374m) 등의 소(小)화산체 사이로 흘러내린 빗물이 습지를 만들었다. 660∼1650m²(약 200∼500평) 규모의 크고 작은 습지를 꽝꽝나무, 솔비나무, 산철쭉 등이 둘러쳤다. 외래식물 유입을 서어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 등 울창한 숲이 막아준다.
○ 종합학술조사 시급
습지는 남북으로 길게 누운 평탄 지형으로 일부는 1100도로에 잘려나갔다. 도로 주변에 습지 탐방객을 위한 목재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 주변 물이 있는 곳은 좀개수염, 올챙이고랭이, 세모고랭이 등이 군락을 형성했다. 습한 지역은 기장대풀, 잔디바랭이가 우세하고 습지 생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역은 제주조릿대가 침범했다. 습지의 육화(陸化) 과정을 모델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조그만 하천을 건너 한라산 방향으로 더 진입했다. 마치 푹신한 이불 위를 걷는 등 흙이 말랑말랑했다. 이탄층(泥炭層)이었다. 밑을 파면 수백 년, 수천 년에 이른 식물 찌꺼기가 나올 듯했다. 한라산 식물상 변화를 밝혀줄 열쇠를 쥐고 있지만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