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한중일 학술회의전쟁-식민지배 경험이공동의 정체성 형성 방해국경 초월한 역사인식 필요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야포. 일본은 러일전쟁 뒤 “아시아의 황색인종이 백인 제국주의를 최초로 무찔렀다”는 식의 동아시아 인식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제국주의적 동아시아관과 다름없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러나 전쟁, 식민지 지배 등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동아시아의 공통된 정체성 형성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역사 인식의 구축’이 필요한 대목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 세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동북아역사재단과 동아시아연구포럼 주최로 6, 7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다. 근현대기 한중일 3국이 동아시아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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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마사노리(中村政則) 일본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러일전쟁을 다룬 일본의 시대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통해 일본의 대외관을 분석했다. 나카무라 교수는 “이 소설은 러일전쟁을 침략적인 러시아에 대한 ‘조국 방위 전쟁’, 아시아의 황색인종이 백인 제국주의를 무찌른 최초의 전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명분을 제공하는 ‘대동아 공영권’과 같은 동아시아 인식으로 발전했다.
최덕수 고려대 교수는 ‘근대 한국 동아시아 인식의 기원과 전환’을 통해 한국의 동아시아관을 소개한다. 최 교수는 고종이 당시 왜양일체론에 대해 “왜와 양은 다르다”는 견해를 고수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종이 ‘동아시아는 서구와 다르다’는 나름의 동아시아 인식을 보였다는 뜻이다. 이는 이후 동양평화론 등 한국의 동아시아 인식으로 이어졌다.
쉬슈리(徐秀麗)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통하지 않으면 세계와 직접 연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19세기 중엽부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의식을 갖게 됐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최근 한국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논의되는 것과 관련해 그는 “중국 일부 학자는 한국이 경제 발전과 더불어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