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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맛!]비빔밥

입력 | 2009-10-30 03:00:00

조선 민초들이 즐긴 ‘패스트푸드’




“예전에는 외국인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할 때 ‘불고기와 신선로’가 대표선수였다. 그 당시 비빔밥은 그다지 각광받는 음식이 아니었다. 집에서 남는 음식 다 모아 고추장과 계란프라이만 넣으면 비빔밥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체통 따지는 어른들은 비빔밥을 천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여러 자료를 보면 해방 이전 가장 유명한 전통비빔밥은 전주비빔밥도, 해주비빔밥도 아닌 진주비빔밥이었다.”―<김찬별,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에서>

“전주비빔밥은 더운 밥의 양반음식이고, 진주비빔밥은 식은 밥에 내장탕을 곁들여 먹는 서민음식이다. 1593년 6월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전투(1592년 제1차 진주성전투에선 대승)에서 민관군 7만 명이 옥쇄순국하기 직전, 진주성 안의 모든 소를 잡아 골고루 나눠 먹었던 것이 진주비빔밥이다. 이렇게 비장한 이야기를 지닌 음식이 어디 있느냐?” ―<최구식 의원, 200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진주비빔밥은 왜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을까? 전주비빔밥은 어떻게 시장을 천하통일 했을까? 요즘 진주비빔밥은 진주에서도 귀하다. 진주중앙시장의 제일식당(055-741-5591), 천황식당(055-741-2646) 등 몇 곳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갈 뿐이다. 기름으로 볶은 밥에 닭고기를 얹는 해주비빔밥도 분단 이후 맛을 볼 수 없다.

비빔밥엔 안동 헛제삿밥도 있다. 제사상 밥과 나물을 간장(청장)으로 맛을 낸다. 파 마늘 고추장을 쓰지 않고, 탕국에 산적을 곁들인다. 통영 해초비빔밥(멍게비빔밥)에선 향긋한 바다냄새가 난다.

진주비빔밥은 소박하다. 한때 ‘꽃밥(花飯·화반)’이라고도 불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주비빔밥이 훨씬 화려하고 ‘꽃밥’답다. 진주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다. 여기에 제철 나물을 얹어 조선간장과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다. 밑반찬은 제일식당의 경우 김치 동치미 오징어채무침 딱 세 가지뿐이다. 여기에 선지해장국이 곁들여진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단순한 맛인데도 여운이 길다. 혀끝에 오래 남는다.

전주비빔밥은 혀끝에 ‘앵긴다’. 쩍쩍 달라붙는다. 사골국물로 지은, 기름 자르르한 밥에 거꾸로 키워 짧고 통통한(똠방한) 아삭아삭 콩나물과 시금치, 미나리, 고사리, 송이버섯, 표고버섯, 팽이버섯, 도라지, 당근, 애호박, 오이, 파, 취나물, 미나리, 깨소금, 숙주나물, 무, 부추, 김, 무 싹….

웃기(고명)로 황백지단, 황포묵, 한우고기육회, 오실과(밤 은행 대추 호두 잣)를 얹는다. 이른 봄에는 청포묵, 초여름에는 쑥갓, 늦가을엔 고춧잎, 깻잎 등을 얹기도 한다. 재료가 무려 30여 가지.

여기에 순창 찹쌀고추장과 참기름을 살짝 쳐서 놋젓가락으로 설렁설렁 헐겁게 비빈다. 울긋불긋 푸른나물들이 붉은 밥 사이로 툭툭 고개를 쳐든다. 화려하고 걸진 맛. 천지만물이 고루 섞여 하나가 된 오묘한 맛. 그윽하고 황홀하다. 사이사이 푸성귀들의 풋풋한 냄새가 향긋하다.

전주비빔밥은 맛이 늘 입안에 가득 찬다. 맑고 간간한 콩나물국물로 입가심을 하면서 먹어야 새 맛을 느낄 수 있다. 밑반찬도 열무김치, 배추김치, 동치미, 고구마줄기들깨무침, 콩나물잡채, 취나물, 더덕장아찌, 김장아찌, 매실장아찌, 계란탕, 된장찌개 등 헤아릴 수 없다.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무려져/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간다/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적막한 시간의 식사여/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고운기, ‘비빔밥’ 전문>



1593년 6월 진주성 밖엔 왜군 3만7000여 명이 개미떼처럼 들끓고 있었다. 성 안 조선군은 3400여 명. 나머지는 일반 백성 6만6000여 명. 전투 직전, 성 안의 군관민은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그릇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릇 하나에 밥 나물 쇠고기육회를 담은 뒤, 거기에 간장이나 고추장을 쳐서 비볐다. 성은 6월 29일 함락됐다. 6만여 명의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1894년 동학농민군들도 바가지나 그릇에 밥과 온갖 나물을 담아 비벼 먹었다. 이미 큰솥에서 비벼진 밥을 나눠먹기도 했다. 각자 머리띠를 풀어 거기에 비빔밥을 받았다. 비빔밥은 조선시대 야전에서 간편하게 먹는 ‘참살이(웰빙)식 패스트푸드’였던 것이다.

전주비빔밥은 이미 오래전에 서울에 터를 잡았다. 서울명동의 전주중앙회관(02-776-3525)은 북창동 등에 가지를 쳤다. 전주의 고궁(063-251-3211)도 서울명동에 분점(02-776-3211)을 냈다. 전주터줏대감인 가족회관(063-284-2884), 성미당(063-284-6595), 한국집(063-284-2224), 한국관(063-272-8611), 갑기회관(063-212-5788) 등도 여전히 발길이 붐빈다.

전주비빔밥의 성공 이유는 뭘까? 김찬별 씨는 단언한다. “광복 후 서울에서 진주나 해주비빔밥이 성업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전주비빔밥은 1965년에 이미 서울에서 개업하여 성공했다. 전주비빔밥의 유명세는 5할의 전통과 5할의 외식마케팅 성공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대는 섞임의 시대이다. 융합 상생의 세상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마이클 잭슨(1958∼2009)은 왜 그렇게 비빔밥을 좋아했을까. 세계적인 비디오작가 백남준(1932∼2006)은 말한다. “비빔밥은 참여예술이다. 비빔밥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이다. 한국에 비빔밥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열어본 도시락은 김칫국물과 반찬으로 범벅된 비빔밥이었다. 뜀박질로 등교하는 동안 저절로 섞여 ‘꿀맛 비빔밥’이 된 것이다. 저마다 개성을 잃지 않고 하나가 되는 음식. 설움 고통 슬픔 분노를 비벼 웃음꽃 피우는 음식. 논두렁에 둘러앉아 볼이 터지도록 밀어 넣던 밥. 밥 나물 고추장을 자기 입맛대로 넣어 비비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름은 똑같은 밥. 비빔밥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비빔밥은 하늘이다.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