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정신적 통일까진 시간 더 걸릴것”통일조약 성사 주인공쇼이블레 장관 인터뷰통일비용 많이 들었지만 성공기준은 돈 아닌 평화‘분단 40년’ 벽 존재해도 ‘통일 20년’ 큰 진전이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서독 내무장관을 지내면서 40년간 분단된 독일 통합의 주역이 됐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연방내무장관. 사진 제공 독일 연방내무장관실
“아무도, 그렇게 빨리 현실화될 줄 몰랐다.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통일을 계획한다거나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통일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성공적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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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통일의 가능성을 느꼈는가. 1989년인가.
“1989년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신임 미국대사 버넌 월터스 씨가 본에 부임해 자신의 ‘임기 중 통일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대사로 있을 생각이냐’라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초가을이 되면서 동독의 위기는 심각해졌다. 처음엔 조국을 떠나게 해달라는 시위가 점점 정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0월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이 실각했다. 마침내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도 소련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을 무렵에야 비로소 통일이 가능함을 확신했다.”
―장벽이 무너진 뒤 통일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했나.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사태는 훨씬 더 빨리 움직였다. 동독인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다. 장벽이 무너진 11월 9일부터 연말까지 무려 30만 명이 떠났다. 이듬해에도 매주 수천 명이 떠났다. 아무도 새 동독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1990년 2월부터는 통일이 1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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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언론인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동독은 서독에 병합되지 않았다. 동독은 기본법 23조(동독 지역은 서독에 가입함으로써 기본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내용)에 따라 서독에 가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1990년 3월 18일 동독 자유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들은 기본법 23조에 따른 통일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원했다. 그해 8월 23일 동독 의회는 4분의 3의 찬성으로 동독의 서독 가입을 통과시켰다. 새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황을 그르쳤을 것이다.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도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소련이 얼마나 오래 참아 줄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재빨리 기회를 잡아야 했다.”
―다시 1989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바꾸고 싶은가.
“우리는 동독 경제의 건전성을 과대평가했고 그 때문에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했다.”
―서독이 동독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교류를 한 것이 장벽 붕괴에 기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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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독인들이 통일에 만족해한다고 보는가.
“40년에 걸쳐 떨어져 살았다는 것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배웠다. 마음의 벽이 있다고 하지만 마리아네 비르틀러 독일 연방슈타지문서관리위원회(BStU) 위원장은 ‘마음의 벽은 동서독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람 사이에 있다’고 했다. 물론 아직도 문제는 있다. 동독 경제는 아직 자립할 수 없다. 기존 체제에서 혜택을 누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다수는 통일에 찬성하고 있다. 권위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알렌스바흐는 1990년 이후 매년 ‘독일 통일이 행복의 근원인가, 걱정의 근원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해 왔다. 동서독 양쪽에서 대답은 늘 비슷하다. 행복의 근원이라는 쪽이 60%, 걱정의 근원이라는 쪽이 20%다. 얼마 전 새로운 조사는 서독인의 83%, 동독인의 85%가 통일에 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도나 습관은 하룻밤 사이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큰 진전을 이뤘다고 확신한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