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동독을 가다]

입력 | 2009-10-17 02:30:00

“동서독 정신적 통일까진 시간 더 걸릴것”

통일조약 성사 주인공
쇼이블레 장관 인터뷰

통일비용 많이 들었지만 성공기준은 돈 아닌 평화
‘분단 40년’ 벽 존재해도 ‘통일 20년’ 큰 진전이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서독 내무장관을 지내면서 40년간 분단된 독일 통합의 주역이 됐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연방내무장관. 사진 제공 독일 연방내무장관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연방내무장관(67)은 1989년 서독 내무장관으로 통일조약을 성사시킨 주인공이다. 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후계자로 거론됐던 그는 베를린 장벽 붕괴 1년 뒤인 1990년 10월 한 정신병자의 총격을 받고 하반신 불구가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200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 내각에서 다시 연방내무장관으로 돌아왔다. 7일 만나기로 했으나 정치 일정이 겹쳐 불가피하게 서면으로 대체했다. 10여 쪽에 이르는 성실한 답변서를 통해 “동서독이 완전한 정신적 통일을 이루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난 20년간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와의 문답을 정리한다.》 ―갑자기 통일이 됐다는 말이 맞는가.

“아무도, 그렇게 빨리 현실화될 줄 몰랐다.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통일을 계획한다거나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통일에 너무 많은 돈이 들어 성공적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통일의 성공 기준은 ‘돈’이 아니다. 오늘날 모든 독일인이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때 생명까지 위협했던 적대적이고 중무장한 두 블록의 어느 한쪽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언제쯤 통일의 가능성을 느꼈는가. 1989년인가.

“1989년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신임 미국대사 버넌 월터스 씨가 본에 부임해 자신의 ‘임기 중 통일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대사로 있을 생각이냐’라고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초가을이 되면서 동독의 위기는 심각해졌다. 처음엔 조국을 떠나게 해달라는 시위가 점점 정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0월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에리히 호네커 서기장이 실각했다. 마침내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도 소련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을 무렵에야 비로소 통일이 가능함을 확신했다.”

―장벽이 무너진 뒤 통일까지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했나.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사태는 훨씬 더 빨리 움직였다. 동독인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다. 장벽이 무너진 11월 9일부터 연말까지 무려 30만 명이 떠났다. 이듬해에도 매주 수천 명이 떠났다. 아무도 새 동독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다. 1990년 2월부터는 통일이 1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일방적 흡수통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좌파 언론인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동독은 서독에 병합되지 않았다. 동독은 기본법 23조(동독 지역은 서독에 가입함으로써 기본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내용)에 따라 서독에 가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1990년 3월 18일 동독 자유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들은 기본법 23조에 따른 통일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원했다. 그해 8월 23일 동독 의회는 4분의 3의 찬성으로 동독의 서독 가입을 통과시켰다. 새 통일헌법을 제정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황을 그르쳤을 것이다. 협상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위험한 상황도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소련이 얼마나 오래 참아 줄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재빨리 기회를 잡아야 했다.”

―다시 1989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바꾸고 싶은가.

“우리는 동독 경제의 건전성을 과대평가했고 그 때문에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했다.”

―서독이 동독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교류를 한 것이 장벽 붕괴에 기여했는가.

“그렇다.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이나 우편으로 많은 사람이 접촉하도록 했고 스포츠 교류, 문화 교류, 도시 간 자매결연에도 힘썼다. 방송의 힘도 간과할 수 없다. 동독인들은 대부분 서독 TV를 보았고 서독 라디오를 들었다. 한 언론인은 ‘통일은 매일 TV 앞에서 일어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87년엔 동독 주민 100만 명이 서독을 방문했다. 많은 동독인이 당의 선전과는 다른 서독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이 처한 조건에 불만을 품게 됐다고 본다.”

―지금 동독인들이 통일에 만족해한다고 보는가.

“40년에 걸쳐 떨어져 살았다는 것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배웠다. 마음의 벽이 있다고 하지만 마리아네 비르틀러 독일 연방슈타지문서관리위원회(BStU) 위원장은 ‘마음의 벽은 동서독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과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람 사이에 있다’고 했다. 물론 아직도 문제는 있다. 동독 경제는 아직 자립할 수 없다. 기존 체제에서 혜택을 누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불만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다수는 통일에 찬성하고 있다. 권위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알렌스바흐는 1990년 이후 매년 ‘독일 통일이 행복의 근원인가, 걱정의 근원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해 왔다. 동서독 양쪽에서 대답은 늘 비슷하다. 행복의 근원이라는 쪽이 60%, 걱정의 근원이라는 쪽이 20%다. 얼마 전 새로운 조사는 서독인의 83%, 동독인의 85%가 통일에 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태도나 습관은 하룻밤 사이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큰 진전을 이뤘다고 확신한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