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192개 회원국이 가입한 거대한 국제기구이며 국제분쟁 해결에 있어 주역을 담당하는 국제 정치의 중심이다. 한국은 1991년 유엔에 가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분단국으로 유엔 회원국이 되지 못했다. 지금은 당당한 유엔 회원국이며 글로벌 리더로서 막강한 파워를 갖고 국제분쟁 현장을 누비는 반기문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출신이다.
반 사무총장은 2007년 1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여 임기 5년의 절반이 벌써 지났다. 앞으로 2년 있으면 재임 여부가 결정된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은 반 사무총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이다. 대부분은 한 차례씩 연임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반 사무총장이 2년 후에 연임되어 글로벌 리더로서 활약하고 조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주기를 기대한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하여 중동사태 등 세계 분쟁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24시간을 뛰어도 부족한 반 사무총장이 귀중한 시간을 내어 국내 정치를 언급했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정치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더는 국내 정치에는 끼어들지 않고 국제 문제에 전념하겠으니 국내 정치권에서 자신을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반 사무총장은 국정감사를 위해 10일 유엔을 방문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국내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자신의 이름을 더는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반 사무총장은 특히 “앞으로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사무총장으로서 직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전했다.
반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문제가 비공식적으로 일부 정치권에서 거론됐지만 본인이 직접, 공개적으로 여야 정치인에게 자신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한 의중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반 사무총장은 자신의 이름이 국내 정치에 자주 거론되면 유엔 사무총장 직무 수행에 지장이 있으며, 앞으로 2년 후에 있을 사무총장 재선에도 경쟁후보가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런 부탁을 했다고 보인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앞으로 3년 이상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절반도 끝나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의 할 일이 태산같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후임 대통령 후보 문제를 거론하는 모습도 문제이지만 국내 정치에서 글로벌 리더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려 애쓰는 반 사무총장을 차기 대선후보 운운하는 일은 본인은 물론 국가, 정치권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선거 때만 되면 여야 정당이 유명 인사를 영입하여 특정 정당의 후보로 옹립하려고 야단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 승리하려는 것이 정당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정당의 정체성, 이념도 무시하고 무조건 유명 인사를 영입하여 선거 흥행이나 하려는 후진적인 정치행태가 아직도 잔존한다.
우리는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 G20국가의 대통령과 총리는 모두 소속 정당에서 치열한 당내 리더십 경쟁과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리더로 성장하여 정상에 올랐다. 또한 이들은 지방의원 국회의원 단체장 등 단계적인 정치수업을 통하여 리더십을 형성해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최고의 리더가 됐다. 정치권은 차기 대선후보로 반 사무총장과 같은 유명 인사를 영입 운운하면서 관심을 끌려는 후진적 정치행태를 보이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스스로의 리더십 경쟁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선진화된 정치인상을 보여주기를 요망한다.
김영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