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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아버지 명예회복이라도”

입력 | 2009-09-15 22:00:00


"아버지가 억울하게 사형 당한 줄도 모르고 수십 년을 살았습니다. 기일을 몰라 매년 설날과 추석이면 제사상을 차렸는데…"

1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관계자로부터 아버지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것은 당시 군 수사기관의 조작 때문이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심한운 씨(60·충남 서산군)는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청년시절부터 아버지의 소식을 듣기 위해 전국을 누볐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심문규 씨는 육군첩보부대(HID) 소속으로 북파 됐다가 북에서 체포돼 대남간첩교육을 받은 뒤 2년 만에 남파돼 자수했지만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했다.

진실·화해위는 15일 "'특수임무수행자 심문규 이중간첩사건'을 조사한 결과, 북한군에게 체포됐던 심 씨가 북에서 대남간첩교육을 받고 남파된 뒤에 자수를 했음에도 육군첩보 부대가 증거도 없이 심 씨를 위장자수로 몰아갔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육군첩보부대에서 563일 동안 불법 구금당한 채로 심문을 당한 심 씨는 남파간첩 검거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뒤에 중앙고등군법회의에 기소돼 사형 판결을 받고 1961년 5월 대구교도소에서 처형당했다.

한운 씨는 1959년 외숙모 손을 잡고 간 육군본부 장교형무소 면회실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아버지는 "공부는 잘하고 있느냐, 북파공작원이라 여기 와 있다. 아버지는 곧 나갈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당시는 미처 몰랐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만삭의 어머니는 극약을 마시고 세상을 등진 지 오래였다. 당시 5세였던 누이동생도 갑작스럽게 체해 세상을 떴다.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운 씨는 어머니와 누이 얘기에 목이 메어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가 남파간첩이라는 소식에 집안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는 이도, 알아볼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다.

구두 기술자, 운전기사 등 철이 들면서 안 해 본 일 없이 고생을 한 한운 씨였지만 아버지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다. 아버지처럼 북한으로 파견됐던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찾아 귀동냥을 하며 아버지 소식을 수소문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지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2006년의 일. 아버지의 소식을 애타게 찾는 한운 씨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군 당국이 당시 아버지의 사형 판결문을 전달해 줬다. "1961년 5월 25일, 이 날이 아버지가 사형당한 날이자, 기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확인했지만 한운 씨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아버지처럼 북파 됐다가 생사도 모르는 가족들이 있는데도 숨 죽여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재를 털어서라도 아버지와 함께 파견됐던 동료들의 가족을 돕고 싶습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이날 "국가는 심 씨의 가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며 북파공작원 운용과 관련된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우정열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