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 소송 바람이 불고 있다. 현재 법정공방을 벌이는 연예인만 해도 탤런트 고현정, 권상우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까지 내로라하는 스타급 연예인들이 즐비하다. 특히 기획사와 전속계약 관련 분쟁이 늘면서 대형 로펌(법무법인)의 대리전 양상까지 띄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주먹구구식 '한국형 스타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속계약 분쟁 심화
가장 흔한 소송은 전속계약을 둘러싼 분쟁. 최근 들어 한류(韓流)스타 한 명이 벌어들이는 연간 소득이 웬만한 중소기업 매출과 맞먹을 정도로 연예산업이 발전하면서 연예인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속 계약을 하나의 근로계약으로 중요하게 여기면서 예전과 달리 법적 소송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예전엔 기획사와 연예인은 가족처럼 지내며 주먹구구식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최근엔 지분 및 수익 배분 등 복잡한 관계가 많아지면서 법적 개입의 여지가 많아졌다"며 "연예인들도 법적 분쟁을 '권리 찾기'로 생각하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전속계약 분쟁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전속계약에서 풀린 송승헌,소지섭, 정우성, 김래원 등의 톱스타들이 특정소속사에 속하지 않고 '나홀로 회사'를 차려 독립하고 있다. 처음부터 변호사를 내세워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신인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합의 내용을 갱신하는 계약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한국 연예계의 계약 형태가 명확하지 않아 연예인의 해외 진출 시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영세한 업체일수록 계약 당시에 근로기준법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명시된 법률과 약관 등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단 기준은
전속계약 분쟁에 있어 법원이 판단하는 원칙은 계약이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 및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이에 따라 크게 3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전속계약이 유효한지를 따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는 '계약기간'. 근로계약에 관한 법률에 유추해 계약기간이 지나치게 길어 연예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봉쇄하고 고용을 강제하는 역효과를 낸다면 계약 해지가 타당하다는 취지다. 통상 해외 대형 기획사의 전속기간은 7년이다. 이를 기초로 원더걸스가 속한 JYP엔터테인먼트는 평균 전속계약 기간을 7년, 빅뱅 소속사인 YG는 6년, SS501를 배출한 DSP는 5~7년으로 정했다.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등이 소속된 SM은 전속기간이 13년으로 이른바 '노예계약' 시비에 휘말려 있다. 이에 대해 SM 측은 "연습생 시절 평균 4, 5년 동안 집중 투자하는 국내 기획사 현실을 무시한 지적"이라고 반박한다.
법원의 두 번째 판단 기준은 '수입금 배분의 형평성'이다. 통상 연예인은 다른 직종에 비해 단기간에 수입 규모나 수입원이 크게 달라진다. 최초 계약에 의해 수입금 배분이 현저하게 공정성을 잃으면 민법 103, 104조 등에 근거해 '사정변경에 의한 계약해지' 사유가 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세 번째 기준은 '위약금 규정의 공정성'이다. 법원은 위약금 규정이 연예인과 소속사 양측 모두에게 적용되고, 위약금 액수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도라면 위약금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다. 방송인 붐(본명 이민호)은 최근 소속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점이 인정돼 1심에서 "4억6800여만원을 소속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소송에서 붐 측은 "계약 위반의 위약금이 계약금 및 투자금의 3배로 너무 과다해 약관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약금 조항이 양측 모두에게 적용되고 3배 규정은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동방신기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관계자는 "연예인과 소속사 간 분쟁에서 한쪽이 100% 잘못한 사례는 거의 없다"며 "우선 양측의 신뢰회복이 급선무이고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원만한 합의를 이루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들 연예계 소송에 눈독
전속 계약 외에도 흔히 벌어지는 연예계 법적공방은 드라마나 광고 등 상업 제작물과 관련된 소송이다. 대부분 출연 약속이나 기타 계약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에서부터 분쟁은 시작된다.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에 출연중인 고현정 씨는 또 다른 드라마 제작사와의 출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톱탤런트 권상우 씨는 화보 촬영에 불성실하게 임했다는 명목으로 제작사로부터 각각 억대의 소송을 당했다.
연예인 소송이 늘면서 이 분야 법률시장도 커지고 있다. 이전에는 소송가액이 수천 만 원 대에 그쳤으나, 해외에 진출하는 한류스타들의 등장으로 수십 억 대의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경력이 짧은 실무형 개인 변호사들이 맡던 소송도 이제는 대형 로펌까지 뛰어들고 있다. 5년 동안 약 500억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동방신기 사건의 경우 이번 소송에 국내 5대 로펌인 태평양(SM 측)과 세종(멤버 3명 측)이 맞붙었다.
이종식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