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기자의 눈/이기홍]아프간戰, 제2의 베트남戰아니다

입력 | 2009-08-25 03:04:00


워싱턴의 상징물인 링컨기념관 옆에는 한국전쟁(6·25전쟁) 기념공원과 베트남전쟁 기념공원이 나란히 있다. 장차 이곳 또는 인근엔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관련 기념물도 들어설 것이다. 훗날 멀고 먼 아시아에서 숨져간 숱한 젊은이의 넋을 달래는 이들 공원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들 4개 전쟁을 어떻게 평가할까.

현재 미국에서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때 ‘잊혀진 전쟁’으로 불렸던 6·25전쟁 참전은 “값진 희생”의 상징으로 복원됐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성공스토리의 대명사가 된 한국의 오늘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베트남전은 ‘실패한 전쟁’이란 낙인을 지울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이는 전쟁에서 사실상 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이 맞서 싸운 적(敵)의 의미 자체가 6·25전쟁과는 달랐다. 김일성과 북베트남의 호찌민 주석은 모두 ‘민족해방전쟁’을 내세웠지만 그 나라 역사에서 갖는 정당성과 민중의 지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호찌민은 공산주의자였지만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수범(垂範)의 삶을 실천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 언론과 전문가들이 아프간전을 ‘제2의 베트남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본질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논객들은 게릴라전에 유리한 지형적 특성, 무능한 현지 정권 등 두 전쟁의 유사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아프간의 탈레반 역시 호찌민 정권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1996∼2001년 아프간을 통치했던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자 가운데도 가장 시대착오적이고 파괴적인 그룹이었다. 소련군에 맞서 궐기한 무자헤딘 그룹에 가담했던 그들은 소련군이 철수한 뒤 벌어진 내전에서 파키스탄과 알 카에다 등의 지원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다. 군벌(軍閥) 등 부패 세력의 타도를 외쳤지만 실제론 사상 유례없는 인권탄압 통치를 폈으며 특히 여성의 인권은 최악이었다. 소수민족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선 무차별 학살을 가했고 바미안 불상 등 문화 유적을 파괴했다.

2001년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후원자였던 탈레반은 그해 겨울 다국적군에게 쫓겨났다. 당시 공군력을 제공한 것은 미국이었지만 지상전투는 대부분 탈레반을 증오하는 아프간인들이 수행했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져 전력(戰力)을 낭비하는 사이 재기했지만 그들은 결코 ‘제2의 호찌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김일성 정권이 6·25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듯이.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