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대통령 경축사 30년간 28건 키워드 분석
‘통일’ 총 214회 언급 등
8·15 미완의 광복 강조
‘반공’은 80년대 후반 사라져
지난해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3주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정 비전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이후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를 구성하고 녹색성장 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비전 달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정부의 핵심 어젠다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아일보는 제63주년 광복절을 맞아 1979년부터 2008년까지 30년간 역대 대통령이 발표한 광복절 경축사 28편을 키워드 60개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이 기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모두 8명이 재임했다.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기 정부였던 1980년과 6월 민주항쟁으로 경축사가 없었던 1987년을 제외한 경축사 28편은 총 15만여 자에 이른다.
○ ‘민족·통일·세계·경제’는 단골 메뉴
조사 결과 역대 대통령 경축사에서 자주 언급된 키워드는 △민족(369회) △세계(335회) △남북(239회) △통일(214회) △경제(206회) 등이었다. 100회 이상 등장한 단어들의 빈도수는 총 2283회(62.6%)로 전체 키워드 빈도(3644회)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민족과 남북, 통일 등이 자주 언급된 이유는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이 분단 상태를 남아 있는 민족적 과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축사에서 이들은 “분단이 한민족의 진정한 광복을 가져오지 못한 만큼 하루빨리 통일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식으로 현재의 8·15가 ‘미완(未完)’의 광복임을 강조했다.
반면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관련된 키워드는 △광복(116회) △일본·일제(49회) △독립(52회) △해방(36회) △식민(25회) 등 278회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광복절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한일관계의 중요성 때문에 이에 대한 직접적 표현은 거의 사라졌다”며 “21세기 들어 영향력이 커진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 이념보다 구체적인 정책 제시로 변화
1988년 이전에는 북한을 ‘공산집단’으로 지칭하거나 김일성 체제를 ‘1인의 우상과 기이한 형태의 세습왕조체제’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되는 등 냉전이 끝나고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노태우 정부는 1988년 경축사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이라는 경칭도 사용했다. ‘공산’ ‘반공’ 등은 1980년대 후반부터 거의 사라졌다. 민족, 남북 관련 단어들도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 부쩍 줄어들고 경제, 세계 등의 단어가 늘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는 광복절 경축사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 1998년 경축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도입 △인사청문회 등 국정운영 6대 과제를 발표하고 이를 자세히 설명했다. 박성민 ‘민’ 정치컨설팅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며 “광복절 기념식이 이념을 논하는 자리에서 점차 구체적 정책을 논하는 자리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 대통령별, 시대별 키워드
대통령별 키워드에도 차이가 컸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은 평화, 통일, 민족, 세계 등 주로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과제에 대해 설명하거나 경제발전 등 정부의 정통성과 성과를 강조하고 또 군사정권을 정당화했다.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추진, 1994년 ‘서울 불바다’ 발언 등 남북관계에 관심이 높던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족’ ‘통일’ ‘북한’ 등을 화두로 제시했다. 외환위기와 2002년 월드컵을 겪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 ‘경제’ ‘개혁’ 등을 강조했다. 중국의 부상 등 동북아시아에 대한 역학 구도가 중요해진 시기에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사’ ‘경제’ ‘동북아’ 등을 자주 언급했다.
시대의 화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키워드들도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임기 중에 맞이했던 노태우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1988년에만 올림픽이 8회 언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IMF외환위기’가 18차례나 들어갔다.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축사에서는 지역 키워드가 20번이나 등장하기도 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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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