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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길]경제개발의 길목

입력 | 2009-05-18 02:58:00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투표를 하고 있는 박 대통령(오른쪽)과 육영수 여사.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정희 대통령과 민주주의

경제개발-자주국방 토대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믿어

“지식인-학생들 이해못해 답답”

일부 지식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몰각하고 독재를 자행한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점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새마을사업에 대한 내무부 보고가 있었다. 보고자는 새마을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사유지의 사용, 비용의 분담, 사업 설계 등에 관해 주민들의 합의와 결정이 필요한데, 이해관계의 상충과 의견 불일치로 몇 달이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기에 내무부 관계관이 개입해 해결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더라도 공무원이 간섭하지 말고 주민들 스스로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도량이 되게 하는 데에 새마을사업의 뜻이 있지 않은가?”

새마을사업에 관해 비판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은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의 경험에서 말한다면 ‘귤을 보냈는데 탱자가 되더라’는 속담과 같이 대통령이나 중앙정부의 지시가 하부 기관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그 뜻과 방법이 왜곡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귤을 보낸 진의를 왜곡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시의 정당정치에 혐오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분은 나와의 대화에서 “그놈의 정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박 대통령의 연설에는 ‘조국 근대화’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근대화라고 하면 당연히 경제개발과 함께 민주주의의 개념이 포함돼야 할 것인데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을 국가경영의 2대 목표로 내세웠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관념적으로 민주화를 앞세우는 지식인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내가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했고 교수 출신인 점을 인식해서인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이상이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밥을 먹여 주고 나라를 지켜 줄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배고픔과 북쪽의 무력 도발에 대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 지식인과 학생들은 왜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은 중남미의 많은 개발도상국이 정치적 불안과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정치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경제개발을 일관적으로 추진할 수 없고, 경제개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고 또 이로 인해 정치 불안이 계속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데 우리의 사정도 그와 같다고 그는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권을 강력히 통제했고 그것이 잘못이라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고 맞섰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공격하지만 외국에서는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그 당시의 정치 상태를 ‘권위주의’라 하지 ‘독재정치’라고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3권이 엄연히 분리돼 있었고, 비밀투표에 의한 선거제도가 있었으며 언론의 거센 비판과 학생들의 데모가 끊이지 않는 나라의 정치 상태를 스탈린이나 김일성 독재정치와 같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