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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타고 떠나자]청풍명월을 만나러…

입력 | 2009-04-16 16:14:00


경찰 싸이카와 순찰차량이 호위해주는 여행을 아시는지….

국가원수, 국빈에게나 허락되는 이 사치를 나도 누릴 수 있다. 경찰이 의전을 하는 여행상품에 가입해 '묻어가면' 되는 것.

● "참, 쉽죠~"

13일 충북 제천시와 코레일이 1년에 한 차례 운행하는 '추억의 멜로디 트롯 음악열차'에 올랐다. 해마다 500명씩 여행객을 모집해 운행하는 '음악열차'는 제천시에선 제법 큰 행사다.

제천 행 ‘추억의 멜로디 트롯열차’

이날 '추억의 멜로디 트롯열차'는 오전 8시8분 영등포역을 출발했다. 청량리를 거쳐 중앙선을 달려 오전 11시 15분 제천역에 도착했다. 경찰이 행사장을 호위하는 가운데 엄태영 (51) 제천시장의 인사말을 받고 버스 10대에 나눠 청풍 문화재단지로 이동했다.

제천역까지 오는 2시간여 동안 열차 1번 객실에서는 '트롯 열차'답게 서교원, 김보성, 이상번 등 트롯 가수들의 공연과 승객들의 노래자랑이 열렸다.

스피커가 연결된 각 객실도 술 한 잔 걸친 승객들의 '고고장'으로 변신, 흥겨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행객들의 주 연령층은 50~60대. 친구들끼리 또는 자녀들이 보내준 '효도관광'으로 온 듯한 부부도 많았고 두 손 꼭 잡은 노부부들도 분위기를 훈훈하게 했다.

오전 11시 10분경 도착한 청풍문화재단지는 제천지역의 '민속촌'격이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원형대로 복원해 옮겨놓은 시설로 향교, 관아, 민가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보물 528호인 청풍 한벽루와 보물 546호 석조여래입상(보물 546)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날 이곳에 머문 시간은 약 30분. 문화재를 천천히 둘러볼 시간은 부족했고,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향한 발걸음은 빨랐다.

인근 청풍면 번화가에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여행객 500명을 태운 버스는 또 다시 어디론가 서둘러 출발했다.

아침부터 오후 1시 반이 되기까지 서둘러 기차를 타고, 서둘러 내리고, 서둘러 버스타고, 서둘러 산책한 뒤, 또 서둘러 버스에 오르고 내려 또 다시 서둘러 어디론가 출발…. 이 여행의 컨셉트가 '서둘러' 인가 의심이 가는 순간, 또 다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에게 "서둘러 배에 오르라"는 말이 날아왔다.

이 여행의 백미는 바로 '충주호 또는 청풍호' 유람선 관광이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조성된 인공호수 격인 충주호는 최근 10여년간 명칭을 둘러싸고 관련 지자체들이 갈등을 벌여왔다.

제천시는 "호수 면적의 대부분(51%)을 제천시 청풍면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풍호'라고 불러야 한다"고 고집해 왔으나 충주시는 "충주댐 건설로 생긴 호수이므로 당연히 '충주호'"라고 맞서왔다. 이 때문에 같은 호수인데도, 제천시는 '청풍호', 충주시는 '충주호'라고 부르고 있다.

유람선에 올라 장회나루까지 가는 1시간 20분간 "저 산이 사람 얼굴로 보이시는 분은 성격이 무난한 분이십니다"와 같은 위트 섞인 안내방송을 따라 관광객들은 호수 주위의 단양팔경을 감상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수면이 20여m나 내려가 있어 산은 더욱 높아 보였다. 가뭄 전만해도 바지선으로 난 길이 수평이었으나 이날은 배를 탈 땐 하산, 내릴 땐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야했다. 그것도 꽤 난이도 높은 코스로.

'트롯열차'라는 이름답게, 주최 측은 여객선 1층에 음향과 조명시설을 마련해 놓고 '댄스파티'를 원하는 관광객들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토록 서둘렀던 이유는 결국 이 유람선을 타기 위했던 것으로 짐작이 갔다. 이후의 일정은 느긋하게 진행됐다. 시장이 직접 나와 여행객들을 맞이할 정도로 제천시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제천역 앞 재래시장 투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생각대로 하면 되는 여행'

유람선에서 오후 3시경 내려 약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제천역 앞 재래시장으로 이동했다. 역 광장에서 열리는 노래자랑 관람을 포함해 약 500m 구간에 걸쳐 조성된 재래시장 투어에 배정된 시간은 3시간.

대형 마트에 익숙해진 도시 주부들에겐 오랜만에 물건값 흥정하면서 싱싱한 야채를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침 기차 안에서부터 술을 한두 잔씩 들이키던 낯익은 '어르신들'은 재래시장 한 구석에 아무렇게 자리를 펴고 앉아 새우젓을 안주 삼아 또 다시 한 잔. 기차에서, 유람선에서 춤추는 데 맛들인 여행객들은 제천역 광장 노래자랑 객석에서 계속해서 몸을 흔들어 대고….

전반적으로 각자 스타일에 맞게 설계된 프로그램이었으나 청풍문화재단지에서의 '조깅관람', 계속해서 여행객들에게 대한민국의 성장 비결 '빨리 빨리'를 재학습 시키는 분위기는 아쉬웠다.

◆ 여행 Tip: 충주, 제천 지역 기차 여행으로는 이 밖에도 '청풍호반 벚꽃-유람선-제천 5일장 투어', '청풍명월 벚꽃 ', '충주 복사꽃'(이상 충주호 유람선 관광 포함)과 '제천 재래시장 러브투어 관광열차', '가정의 달 패밀리 여행열차', '충주호, 천추태후 세트장 관광열차' 등이 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