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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칼럼]2009년 4월 5일, 남과 북

입력 | 2009-04-07 02:54:00


“김정일은 로켓을 쏘아 올리지만 나는 나무를 심는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떠벌린 지난 일요일은 식목일, 반주를 곁들인 거나한 저녁 식탁에서 시청한 TV 뉴스라 기억의 정확성에는 자신이 없다.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말을 했는지, 혹은 내 머릿속에서 그런 말이 듣고 싶어 환청을 한 것인지-그건 어떻든.

북에서 금강산 관광객을 쏘아 죽이고 핵실험을 하고 로켓을 발사하는 마당에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만일 경색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변상이다. 그런데도 일부 북한 전문가는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경색국면을 풀어야 할 방책도 우리가 발의해야 할 것으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에 특사를 파견한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어느덧 공론화되고 있다. 북의 로켓 발사가 임박한 가운데 런던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급거 귀국한 대통령의 제일성(第一聲)도 북이 받아들인다면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답답한 보도였다. 그런 판국에 북에선 로켓을 쏘아도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는 TV 보도는 근래의 청와대 동정 가운데선 가장 신선한 감흥을 내게 주었다.

北은 로켓쏘고 南은 나무심어

나무 심기와 관련해선 나는 다른 이 대통령의 추억이 있다. 1959년이었던가. 지금부터 50년 전의 일이다. 나는 의자도 없는 군 수송기를 타고 광주의 상무대에 가서 육군의 대연습작전을 참관한 일이 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억! 하는 느낌이 복받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내 나라 내 강산의 모습은 경지정리 이전 당시의 꼬불꼬불한 논두렁 밭두렁으로 주름진 꼴이 흡사 어느 조각작품에서 본 늙은 창녀의 쭈글쭈글한 뱃살처럼 민망하고 처량했다. 게다가 가도 가도 나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뿐이었다. 상무대에선 기자석 바로 앞 지근(至近)의 거리에서 당시 85세의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귀경하기 위해 다시 군 수송기에 오르려고 하자 노 대통령이 전용기 앞에서 수행하던 오재경(吳在璟) 공보실장을 시켜 기자단 일행을 가까이 불러 모아 일장 훈화를 했다.

‘내가 오래 외국서 살고 보니 세상에 한국의 배나 사과처럼 맛있는 과일이 없다. 산채도 그렇고 야채도 그렇다. 모두 한국의 흙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에 나무가 없어 비만 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흙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버리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부디 여러분 기자들이 국민을 계몽해 산에 나무를 심어 이 땅의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앞장서 달라’는 요지였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이나 그 이후나 우리 세대는 봄만 되면 민둥산에 올라가 나무를 심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한국이 푸르러졌다는 소식을 놀라움과 함께 전한 미국 신문을 보고 우리도 놀랐다. 눈을 비벼 돌아보니 과연 기적과 같은 한국의 그리닝(푸르러짐)이 꿈 아닌 현실로 우리 앞에 이뤄져 있음을 뒤미처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광복 후 우리 세대가 성취한 3중의 혁명 가운데서 소리 소식 없이 가장 먼저 일궈낸 국토의 ‘녹화혁명’을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산업화혁명이나 민주화혁명은 세계에 다른 성공 사례도 많고 그건 또 시간을 단축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토의 녹화혁명은 남한(북한은 제외됨)의 경우가 20세기의 유일한 성공 사례요, 제3세계에선 초유의 성공 사례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발표한 바 있다.

공업화는 경제의 ‘압축’성장으로 가능하지만 산림녹화는 수목의 압축성장이 불가능하다. 거기에는 수많은 인력과 함께 수십 년의 세월이 투자돼야 한다. 녹화사업은 참으로 노동집약적이요, 시간집약적인 대역사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그걸 해낸 것이다.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광복 직후만 하더라도 숲은 북녘에 있었고 남쪽은 벌거벗은 민둥산뿐이었다. 잘못된 정치의 리더십은 그러한 남북의 대조를 반세기 만에 뒤바꿔놓아 버렸다. 남녘엔 우거진 숲이, 북에는 벌거벗은 주체사상의 민둥산만이.

‘3대 세습체제’ 안정화될까

4월 5일 북에선 로켓을 쏘아 올리고 남쪽에선 나무를 심었다. 중국은 1960년대 초에 이미 핵실험에 성공했으나 그 뒤에 온 것은 대기근과 홍위병의 난동이었다. 오늘날 경제대국 중국의 굴기(굴起)는 핵무기를 앞세운 ‘선군 정치’가 아니라 개방 개혁 정치의 소산이다. 지구를 수십 번 파괴할 만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무수히 갖춘 옛 소련조차 국민의 배를 곯게 하고선 망하고 말았다. 시원찮은 로켓 한 방 쏘아 올렸다 해서 21세기의 개명천지에 3대 세습 독재체제의 지반이 안정화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구경이나 하고 내일의 세대를 위해 오늘 나무를 심자. 계속 나무를 심자.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