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3차례의 숙청을 당하고도 끝내 살아남아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다. 김 감독이 무명(無名)의 한국야구를 세계에 소개했듯이.
숙청까진 아니어도 김인식 감독도 2004년 말 치명상을 입었다. 급성 뇌경색이었다. 막 한화 감독으로 취임한 직후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기간 중 도쿄에서 만났을 때도 짬이 나면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WBC를 지켜본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경기 전 세리머니에서 김 감독은 한 번도 필드로 나오지 않았다. 덕아웃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김성한 수석코치가 대신했다.
절뚝거리는 걸음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국민들이 보고 혹시 창피하게 여길까봐 그랬다.
김인식은 ‘솜 속에 바늘을 숨겨둔’ 사람이다. 평소 김 감독은 필드 밖에 나가면 야구 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례로 김 감독이 지인에게서 선물 받아서 늘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 얘기는 몇 번이나 들은 것 같다.
3년 전 1회 WBC에서 세계 4강을 이룩했을 때에도 김 감독은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에 대한 고마움부터 꺼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 감독을 믿어주고 맡겨준 김 회장의 결단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희망구호로 떠오른 “위대한 도전”도 실은 한화의 그룹 광고카피에서 유래했다. 김 감독 나름의 ‘보은’인 셈이다.
은의는 오래 기억하고, 원한은 가슴에 묻어둔다. 그렇다고 부처는 아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칼을 뽑는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의 평을 빌리면 “그 깊이를 알 수 없기에 김인식은 무섭다.”
‘인간이란 운명을 탈 수는 있어도 거역할 수는 없다는 것은 역사 전체를 바라보아도 진리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인간은 운명이라는 실을 짜나갈 수는 있으나 그 실을 끊어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절망하는 수밖에 없느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운명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어떤 때에 얼굴을 내미는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누구든 운명이 자기에게 미소를 지어줄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역경에 빠지더라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