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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보는 세상]‘빛으로 뇌를 읽는 시대’ 온다

입력 | 2009-03-27 02:58:00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미래 살인자의 얼굴을 미리 알아내는 ‘예지자’는 머리를 박박 깎고 나온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과학자로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예지자의 머리에는 광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케이블을 통해 예지자의 뇌에 레이저를 쏘고 반사돼 나온 파형을 분석해 살인자의 얼굴을 컴퓨터로 확인한다.

여기서 레이저는 파장이 780∼9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의 빛인 근적외선이다. 관객 입장에선 황당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실제 하버드대의대 데이비드 보아스 교수팀이 1990년대 말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근적외선 기반 뇌활성 측정기법(NIRS)’이다.

뇌혈관으로 지나가는 적혈구는 머리뼈를 통과한 근적외선을 흡수한다. 이때 적혈구가 산소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근적외선의 흡수도가 변한다. 뇌가 산소를 많이 쓸수록 NIRS의 신호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산소 농도보다는 미미한 효과지만 머리색에 따라서도 근적외선의 흡수 정도가 달라진다. 검은 머리보다는 금발이, 금발보다는 대머리가 측정이 더 잘된다고 알려져 있다. 머리색이 어두울수록 근적외선을 많이 흡수해 실제 뇌로 들어가는 양이 줄기 때문이다. 영화 속 예지자가 모두 머리를 깎고 나온 걸 보면 영화 제작 당시 스필버그 감독이 이 기술을 이해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NIRS로 미래 살인자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체에 해를 주지 않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 진단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환자의 뇌에서 산소 농도를 측정하기 위해 간혹 이 장치가 쓰인다.

이 장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뇌 영상을 얻는 것이다. 자기장을 걸어 뇌 활동을 측정하는 고가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NIRS다. 최근 우리 연구실은 NIRS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영상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중국 호주 등 외국 100여 개 연구팀이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 곳곳의 과학자들이 NIRS를 연구하고 있으니 ‘빛으로 뇌를 읽는’ 시대가 조만간 올 것으로 보인다. 먼 미래에는 정말 이 장치로 생각까지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럼 마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머리를 검게 염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예종철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