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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주재연 열사 기념사업 흐지부지

입력 | 2009-03-03 07:47:00


14세때 일본경찰에 체포 ‘최연소 항일지사’

2006년 공적 드러나 추진… 3년째 기념행사도 못열어

일제강점기 ‘최연소 항일지사’로 알려진 여수 출신 주재연(朱在年·1929∼1944·사진) 열사 기념사업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본보 2006년 3월 8일자 A16면 참조

▶ “14세 항일지사, 그 높은 뜻 기립니다”…주재연 열사

일경에 체포될 당시 14세이던 그는 2006년 드러난 일제 재판기록에 따라 ‘최연소 항일지사’로 확인됐고, 그해 제61주년 광복절에 이르러서야 국가보훈처의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시작될 듯했던 주 열사 기념사업은 3년째 기본 틀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2일 후손들에 따르면 전남도와 여수시는 당시 ‘최연소 애국지사’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관순 열사 기념사업을 능가하는 규모로 큰 사업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으나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남도는 당시 “2009년 제90주년 3·1절 기념식을 돌산읍 작금마을 주 열사 기념사업 현장에서 준공식과 함께 치르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준공식은커녕 작은 기념행사조차 열리지 않았다.

전남도는 2007년 5월 “여수시가 유족들과 선양사업추진위를 구성하고 생가복원 묘역정비 등 구체적 사업계획을 세워 추진하길 바라며, 그 계획이 나오면 도가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는 공문을 시에 보냈으나 후속조치는 중단된 상태.

주 열사의 조카 주춘배 씨(72)는 “나이 어린 소년이 혈서를 쓰고 희생했는데 고향에서조차 제대로 그 뜻이 알려지지 못해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순천지원 재판기록(1944년)에 따르면 주 열사는 농사일을 도우면서 “조선독립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마을 뒷산 바위에 ‘朝鮮日本別國’(조선일본별국·일본과 조선은 딴 나라), ‘日本島鹿 敗亡’(일본도록 패망·일본 섬놈들은 패망한다) 등 항일 문구를 직접 새기기도 했다.

주 열사는 1943년 9월 23일 일경에 체포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일제 경찰이 ‘어린 나이에 단독으로 범행했을 리가 없다’며 배후를 추궁하면서 고문을 가해 이듬해 1월 석방된 뒤 한 달여 만에 숨졌다.

김권 기자 goqu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