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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 기자의 베이스볼 에세이 in 하와이

입력 | 2009-02-23 07:49:00


롯데 이대호(27·사진)에게 ‘천적’이 한 명 생겼습니다. WBC 대표팀 류중일 배터리 코치입니다. 훈련 막바지가 되면, 이대호와 류 코치의 얼굴은 늘 벌겋게 달아올라 있습니다. 다툰 거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쉼 없이 이어지는 펑고 행진 때문입니다. 최소한 하루에 100개씩은 합니다. “와, 코치님 펑고 정말 살벌하네예.” 제자가 큰 소리로 항의해보지만 스승은 끄떡없습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내일은 50개 더!”

이대호는 3루에서 펑고를 받습니다. WBC에서 여차하면 3루수로 나서야 합니다. 학창시절 친구였던 추신수의 소속팀(클리블랜드)이 희한한 조건을 내걸어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팀에서도 3루를 보니까 못 할 건 없어요. 하지만 WBC에서는 실책 하나로 온 국민을 실망시킬 수 있잖아요. 너무 부담이 커요. 피하고 싶죠.” 스스로도 잘 압니다. “제 이름 이니셜이 DH 아닙니까. 저는 여기 DH(지명타자)로 왔다니까요.” 짐짓 농담도 해봅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이대호를 뺀 타선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2006시즌 타격·홈런·타점 1위를 싹쓸이했던 한국 프로야구의 간판타자입니다. 부산이 자랑하는 롯데의 4번타자이기도 합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빛났습니다. 금메달의 영광을 완성한 건 이승엽(요미우리)이지만, 착실한 한 방으로 한국을 준결승까지 이끌어놓은 건 이대호였습니다. 김인식 감독도 그래서 고민합니다. “대호를 그냥 벤치에 앉히기엔 너무 아깝잖아.”

게다가 이번엔 책임감이 더 큽니다. 영원히 해결사 노릇을 해줄 것 같았던 이승엽과 김동주(두산)가 없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아무리 툴툴거려도 사실은 그의 각오가 꽤 진지하다는 걸 모두가 압니다. 류 코치도 그랬습니다. “대호는 청개구리 같지만 결국은 주문한 대로 다 해내거든요. 그래서 좋은 선수죠.” 이대호도 웃어버립니다. “감독님이 하라시면 해야지요. 나라를 위해 뛰는 거 아닙니까.”

ESPN은 3년 전 WBC 미국전에서 한국이 승리한 뒤 기사의 첫 머리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이번엔 이대호가 ‘또다른 이승엽’이 돼 세계를 놀라게 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준비, 무척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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