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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시신서 결혼반지 보고 “여보…”

입력 | 2009-02-02 02:59:00


강호순에 희생된 40대 여성 빈소 울음바다

결혼-출산 앞둔 아들-딸 “고생만 하시더니…”

“30년을 억척스레 일해서 아파트 한 채 장만했는데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1일 경기 안산시 안산세화병원 장례식장.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다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39) 씨에게 희생된 김모(당시 48세) 씨의 빈소에는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남편 A(56) 씨는 “시신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보고서야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남편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김 씨는 경기 군포시의 한 전기회사에 다니며 생계를 도왔다. 남편이 몽골까지 가서 돈을 벌고 김 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끝에 김 씨 부부는 2003년 안산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했다. 결혼 30년 만에 마련한 보금자리였다.

실종 열흘 전인 지난해 10월 31일은 김 씨의 생일이었다. 이날 낮 회사에서 근무 중이던 김 씨 앞으로 꽃배달이 왔다. 평소 말이 없고 무뚝뚝하던 남편으로부터 받은 첫 꽃 선물이었다. 동봉된 생일카드에는 ‘젊었을 때 먹고살기 힘들다고 못 챙겨줘서 미안해. 앞으론 쉬는 날 낚시도 같이 가고 즐겁게 삽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내 평생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다”고 말하던 김 씨는 3개월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A 씨는 “집안 곳곳에 아내가 공들여 가꾼 흔적이 배어 있어 이곳에서 더는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어렵게 장만한 집이지만 조만간 집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지난해 5월 결혼한 딸은 두 달 뒤 출산을 앞두고 있고 아들도 결혼을 준비 중이다.

고인의 삼촌인 김모 씨는 “조카손녀의 몸이 약해 어떻게 애를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는데 산모의 엄마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돼 충격이 아주 크다”며 “힘들게 출산준비를 해 왔는데 산모 건강이 잘못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출산을 앞둔 딸(26)은 김 씨의 영정 앞에서 “엄마” “엄마” 하며 온종일 흐느꼈다. 아들(28)도 침통한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결국 예비 며느리를 보여드리지 못하게 됐다”며 “그렇게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가 한창 행복할 때 가셔서 차라리 다행스럽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유족은 김 씨가 실종됐을 때 그 무렵 만나기 시작한 동창들과 여행을 떠났는데 연락이 안 되는 것이려니 생각하며 집에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여러 차례 점을 봤을 때도 ‘살아 있다’는 점괘가 나와 안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군포의 20대 여성이 실종됐다는 기사를 보고 걱정을 하던 차에 비보를 듣게 됐다.

안산=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