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 부부, 일상을 다투다
달마다 10만 원씩 할부 값을 내면서 ‘명품 가구’로 집 안이 고급스러워졌다며 뿌듯해했다. 밸런타인데이엔 서울 강남의 레스토랑에 가선 “강남이 고기가 좋아”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스파라거스와 맛이 똑같다면서 스테이크에 파를 곁들이고선 비싼 요리 같다며 좋아했다. 그들은 착실하게 돈을 모으면서 살아가지만, 분위기 낼 땐 내줘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맞벌이 부부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연출 류주연)은 선미와 종철 부부의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이 파국을 맞는 데서 출발한다. 계기는 선미의 임신. “이제 자긴 아빠가 되고 난 엄마가 돼”라고 희망에 부푼 표정으로 말하는 아내를 향해 남편은 “우리가 그래 조심했는데, 서로”라며 황당해한다. 임신이란 ‘늘어날 입’을, ‘더는 분위기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가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명의 배우가 1시간 반 동안 끌어가는 이야기는 오늘의 세태를 거울처럼 비춘다. 좀 더 좋은 차를 갖고 싶고, 좀 더 좋은 곳으로 여행하고 싶어 하며, 열심히 돈 모으고 절약하면서 실현 가능한 미래를 그려보고 행복해하는 부부. 그러나 그 행복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연극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낙태하자는 남편과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아내의 말다툼은 옆집 부부싸움을 보는 것 같다. 그만큼 사실적이다. “적금 20만 원, 공과금 10만 원, 우유 녹즙 5만 원, 산악회 회비 5만 원….” 지출 항목을 하나하나 따지며 부부가 입씨름할 때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씁쓸해진다.
극은 무게감을 덜어내고, 명랑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래서 부담을 주지 않고도 여운을 남긴다. 때로는 재미나고, 때로는 위태로운 결혼 생활을 묘사하는 데 인물들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적절한 역할을 한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연우소극장. 28일까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 8시, 일요일 오후 4시. 1만5000∼2만 원. 02-764-7462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