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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 농작물 못팔아 애간장 … 라면 - 설탕 못구해 발동동

입력 | 2008-06-19 02:57:00

출하 기다리는 양파경남 함양군 유림면에서 수확한 양파가 18일 도로와 농로 변에 가득 쌓여 있다. 도시로 보내야 하지만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화물차량을 구하지 못해서다. 함양=변영욱 기자

기름 빌리러 온 탱크로리들충남 연기와 논산의 주유소에서 보낸 탱크로리가 18일 대전 시내 주유소에서 급유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화물연대 운송 거부가 장기화되자 재고가 부족한 주유소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주유소로부터 기름을 빌리는 모습이다. 대전=연합뉴스


■ 농어민-영세상인들 한숨

제주 양식장 사료공급 제때 안돼

“3, 4일 더 지나면 집단폐사 우려”

동네 슈퍼엔 생필품까지 떨어져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6일째 계속되면서 피해가 서민 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축산, 과수농가는 사료를 구하지 못하거나 농산물, 수산물을 제때 출하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주유소에는 기름이 떨어져 가고 동네 슈퍼마켓은 과일, 채소를 포함해 생필품을 받지 못하는 곳이 늘었다.

○ “출하 못한 매실 버릴 판”

전남 광양시 다압면의 배모(52) 씨는 18일 “빨리 매실을 수확해 출하해야 하는데 화물차가 다니지 않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2ha 규모로 매실을 재배하는 그는 “차량이 없다고 화물회사가 매실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미 고객에게 보낸 매실은 기한이 지났다며 반품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해마다 15t을 주문받아 팔았는데 올해는 출하가 중단되는 바람에 3∼4t 정도를 버려야 할 것 같다는 얘기.

전남 광양은 매년 매실 7500t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주산지. 본격 출하 시기를 맞아 평소 같으면 하루 평균 30∼40t 유통됐을 텐데 최근 10t 아래로 떨어졌다.


▲ 영상취재 :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제주에서는 양식어민이 큰 타격을 입었다. 넙치 양식장에 사료가 제때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지역 300여 개 넙치 양식장에서 소비하는 사료량은 하루 360여 t. 양식장마다 3, 4일 공급할 수 있는 사료밖에 없어 운송 거부가 길어지면 넙치 집단 폐사가 우려된다.

어민들은 16일부터 자가용 화물차량을 빌려 긴급 수송에 나섰다. 내수 및 수출용으로 하루 66t만 처리된다. 평소보다 15∼20t 줄어든 것이다.

양식업을 하는 오모(44) 씨는 “사료 공급업체의 재고가 바닥이 났다는 소문이 돌아 어민들이 불안해한다. 넙치 사료를 평소의 3분의 1로 줄여 공급하지만 파업이 지속되면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양식농사를 망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제주시 구좌읍, 조천읍 지역에서 수매하는 마늘은 500t가량이 육지로 반출되지 못해 창고에 쌓였다. 물량을 계약한 농민은 운송 지연에 따른 가격 손실을 걱정한다.

경기 양평군의 180여 축산농가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사료 공급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동네 슈퍼와 택배업계에 불똥

슈퍼마켓 1050곳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대전시슈퍼마켓협동조합은 16일부터 조합 차량 5대를 이용해 생산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실어 오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생산 공장의 물량 공급이 끊긴 이후부터다. 차량 5대로는 제대로 물량을 받기 어렵다.

일반 공산품은 일찌감치 품절됐다. 조합은 물량이 많은 주류 위주로 옮기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공동 물류센터에 공산품이 거의 비어 가지만 물건을 직접 사러 갈 수 없다. 유류비 등이 올라 운송비용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슈퍼마켓협동조합 대구 중서부점 관계자는 “운송 거부 열흘 전부터 회원사 슈퍼가 제품을 미리 확보하도록 해서 지금까지는 큰 차질이 없지만 장기화되면 모든 품목에서 품귀현상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 A택배회사는 최근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 하루에 11t 트럭 10여 대가 전국 각지에 물건을 운송했지만 화물연대의 방해로 트럭이 운송을 꺼려 1t 트럭 1대로 개인 택배 물품만 간신히 보낸다.

A사 대표는 “냉동식품이나 토마토 같은 과일 등 신선도가 생명인 물품은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주 첨단지구 B택배는 삼성광주전자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도권으로 보내지만 요즘은 빈 차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만 개인택배 물품을 받아 온다. 이 업체 관계자는 “직원 월급도 못 맞추게 생겼다. 화물연대 조합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 우리도 죽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원자재 운송안돼 공장 못돌릴판

수출 차질에 신용도 하락 이중고

가락시장 야채 반입량 60% 줄어

■ 中企-유통업체 피해 속출


▲ 영상취재 :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경남 김해시에서 녹즙기를 생산하는 금아기전은 호주,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 모두 1026만 달러(약 104억 원)어치의 제품을 수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 사태로 제품 출고가 중단되면서 수출길이 막히고 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으면서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충남 천안시에서 보호필름을 생산하는 국보화학은 컨테이너 3대 분의 수출상품 출고가 지연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탱크로리 차량 운행 중단으로 점착용제 재고량이 부족해 공장 가동도 중단해야 할 형편이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로 수출 물품 운송 차질, 조업 중단 등 중소기업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라면, 설탕, 화장지 등 일부 생필품 공급에도 적지 않은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17일 접수된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피해 사례 29건을 분석한 결과 수출 중소기업의 직접적인 피해액은 1245만 달러(약 126억9000만 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 생산 차질, 출고 지연, 조업 중단…

충남 당진군에서 전선, 케이블을 생산하는 케이비전선은 다음 달 9일 수출 선적분 케이블 생산에 필요한 원·부자재가 입고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 목초수액시트를 생산해 수출하는 부산 금정구의 KJI공업도 부산항에 도착한 원자재 운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는 수출물품 선적기일(25일)을 맞추지 못할 경우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남 의령군의 중장비 부품 생산업체인 우성하이테크와 김해시의 석고 생산업체인 문교산업은 수입 원자재 운송 지연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다.

이들 중소기업은 당장 수출 차질에 따른 피해보다 대외 신용도 하락에 따른 피해를 더 걱정하고 있다.

이병권 중소기업청 해외시장과장은 “17일 하루에만 29개의 중소기업이 피해 신고를 했는데, 미(未)신고 중소기업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훨씬 심각할 것”이라며 “이들에게 최악의 상황은 납기일을 어겨 위약금을 내는 것보다 해외 바이어가 신용도 하락을 이유로 거래처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피해가 눈 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생활필수품 운송도 차질

라면, 설탕, 화장지 등 일부 생필품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은 장거리 운행을 전담하는 11t 차량 운행이 중단돼 회사가 소유하고 있거나 민간 사업자들이 운행하는 2.5t 소형 트럭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오찬근 농심 부장은 “대형 트럭 한 대가 나르면 될 물량을 소형 트럭으로 수차례에 나눠 운송하다 보니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파업이 장기화되면 물류보다 원료 수급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자체 물류망이 있는 대형마트들은 주요 항만의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일부 수산물을 항공편으로 긴급 수송하고 있다.

롯데마트 탁용규 팀장은 “제주산 갈치의 경우 배 대신 비행기로 각 매장에 공급하면서 종전보다 물류비가 20%가량 늘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도매시장은 산지에서 올라오는 야채 물량이 60%가량 줄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 가동 중단으로 대형가전 배송도 지연되고 있다.

이마트 김윤섭 과장은 “배송이 기존 2, 3일 걸리던 데서 최근 일주일가량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맥주업체들은 여름 대목을 맞았지만 제품을 제때 출하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부 주류 도매상이 맥주 사재기에 나서 ‘맥주 값이 곧 오르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한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