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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04년 ‘원자폭탄 아버지’오펜하이머 출생

입력 | 2008-04-22 02:52:00


“나는 이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죽음의 신이 되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1904년 4월 22일에 태어나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국가 권력과 과학자의 윤리’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연구 성과물이 국가권력에 의해 사용될 때 과학의 의도와 결과는 가치중립적일 수만은 없다. 특히 전시 동원 체제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으로서는 북핵 6자회담이 계속 진행 중이기에 결코 ‘한가한 논쟁’은 아니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만든 장본인이다. 미국 정부는 1942년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원자폭탄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오펜하이머를 임명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지향적인 과학자’는 아니었다. 그의 행적이 그것을 말해준다.

뉴멕시코의 모래사막에서 실시한 원폭실험에서 ‘죽음의 버섯구름’이 피어오르자 공포에 질린 그는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원자폭탄이 사용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미국 과학자 패널 보고서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트루먼 정부는 원폭 투하라는 ‘극약처방’을 강행했다. 이에 격분한 그는 “트루먼 대통령이 나의 손에 피를 묻혔다”고 비난했으나 트루먼 대통령은 “피는 내 손에 묻었으니 당신은 상관하지 마시오”라며 응수했다.

1949년 옛소련이 원폭실험에 성공하자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수소폭탄 개발 명령을 내렸다.

당시 미국원자력위원회 회장직을 마치고 유엔에 파견된 원자력 자문위원이었던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더 나아가 유엔 차원에서 원자폭탄 사용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할 것을 주장했다.

반공주의자였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오펜하이머가 옛소련 간첩이라고 미 연방수사국(FBI)에 고발했고, 미국정부는 1953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오펜하이머를 모든 공직에서 쫓아냈다.

오펜하이머는 이론 물리학 분야의 뛰어난 연구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원자폭탄은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노벨상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