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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91년 ‘개구리 소년’ 실종

입력 | 2008-03-26 02:50:00


도롱뇽 잡으러 와룡산에 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1991년 3월 26일.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지방의회 선거가 열리던 날이었다. 학교는 쉬고 부모들은 투표장에 가 집을 지키던 아이들은 놀 궁리에 신이 났다. 당시 13세로 또래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철원이가 ‘도롱뇽 수색작전’을 제안했다. 전날 논두렁에서 잡아온 도롱뇽이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의기투합해 와룡산으로 향했던 아이들은 결국 온 국민의 가슴을 애타게 했다. 언론이 도롱뇽을 개구리로 잘못 보도하는 바람에 이들에게는 ‘개구리 소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종 11년 반 만인 2002년 9월, 대구 달서구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5명의 아이는 용산동 와룡산 자락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동네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이었다.

수사팀은 예리한 흉기로 살해당한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다. 그리고 2006년 3월 25일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경찰의 수사 실패는 예고된 것이었다. 실종 당일 5명의 아이가 약속이나 한 듯 귀가하지 않자 가족들은 파출소로 달려갔다. 돌아온 답변은 “경찰관이 모두 투표 감독하러 나가 일손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경찰은 사건 보름이 지나서야 단순 가출이 아닌 실종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단서를 찾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웃지 못할 소동도 많았다. ‘실종 소년들이 나환자촌에 암매장되어 있다’는 신고에 경찰은 나환자촌을 이 잡듯 뒤졌다. 또 한 대학교수가 ‘아이들을 죽인 것은 (실종 어린이)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 주장해 지목된 가족의 마당을 파헤치기도 했다.

생업도 접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헤맸던 부모들은 시신이 발견된 지 1년 반 만인 2004년 3월 비로소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서 한 아버지는 “경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건을 질질 끌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저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떤 낯으로 봐야 하느냐”며 숨죽여 울었다.

부모들은 매년 3월 말이 되면 눈에 밟히는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이 이들에겐 가장 잔인한 계절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