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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풀하우스

입력 | 2008-03-25 03:00:00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이 고등한 존재라는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진화에 어떤 경향이 존재한다고 우기고 있다…이 책의 새로운 설명 도구는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도 별로 없음을 이해시킨다.”》

모든 생물이 고등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윈 이론에 따르면 진화는 서서히, 더 나은 방향으로 일어난다. 자연 상태에서 생존과 생식에 이롭게 적응한 돌연변이 개체가 선택된다. 그렇게 나타난 유리한 특성이 오랜 세월 누적돼 생물은 고등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다윈 이론이 맞다면 실제 화석에서도 그런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침팬지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20세기에 등장한 신(新)다윈주의는 통계법칙을 활용해 화석 기록의 불안정성을 보완한다. 한 종(種)에서 더 나은 다른 종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간 종은 안정되게 큰 집단을 형성하지 못해 화석으로 남을 확률이 적은 것이라고.

다윈주의자들은 이처럼 어떻게든 고등한 생물로 진화한다는 진화의 경향성이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묻는다.

“이런 법칙이 수십만∼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진화’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시원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포유류가 파충류보다 더 적응을 잘해 중생대에 멸종한 공룡과 달리 살아남은 것인가.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 있는 파충류는 뭔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한 시점’에서 환경에 적응한 개체의 변이 과정일 뿐, 수백만∼수천만 년 세월의 복잡한 진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게 굴드의 생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진보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고등한 생물은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이지 진화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제목 ‘풀 하우스(full house)’는 다양한 종이 생겨나 제각기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생태계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 생겨난 게 아니다. 전체 생물군 가운데 호모사피엔스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다세포 동물군의 80%를 차지하는 절지동물은 복잡한 신경을 가진 생물체로 진화하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

결국 진화에서 어떤 경향성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을 법칙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굴드는 “고등 생물로 진화한다는 경향성은 전체 생태계 중 부분적 속성일 뿐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대표하는 속성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특정한 경향성으로 전체를 짐작하는 사고 습관을 버려야 다양성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화의 방향은 여러 갈래이고 그 결과는 필연적이지 않다. 생명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면 지능을 가진 인간이 다시 출현할 확률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굴드는 진실을 보려면 시스템 전체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포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굴드의 설명이 복잡하고 추상적인 진화생물학의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윤완준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