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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초등학교 확 바꾼 ‘태권도의 기적’

입력 | 2008-03-13 03:07:00

영어 - 한글 이름 쓴 태권도복 미국 매사추세츠 주 치커피 시의 패트릭보위 초등학교에서는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체육시간에 태권도가 도입되면서 아이들의 생활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이 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김경원 관장(뒷줄 왼쪽)이 4학년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치커피=공종식 특파원


매사추세츠 치커피市 패트릭보위초등학교 화제

《“한나, 두울, 셋, 넷….”

11일 오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치커피 시 패트릭보위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선 난데없이 우렁찬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모든 학생이 비록 서툰 발음이기는 하지만 한국어로 하나부터 열까지 셌다. 인근 스프링필드 시에서 ‘US태권도센터’를 운영하는 김경원 관장이 지도하는 ‘태권도 정신교육’ 시간이다.》

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태권도 실습과는 별도로 한 달에 한 번씩 이뤄지는 정신교육은 절도가 있었다. 학생들은 지시에 따라 일어서기와 앉기를 반복했다. 한국말 ‘차렷’ 구호에 맞춰서 10초 동안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는 주의력 집중 교육도 무난하게 마쳤다.

다음은 예절 교육.

한 학생은 ‘교실에 들어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선생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태권도의 5가지 정신 중 하나인 ‘존경’의 사례를 들어보라는 질문에 “항상 윗사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어른스러운 답변을 내놓아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신교육이 끝나고 김 관장이 교실 문을 나서자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일어나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많은 학생이 복도에서 취재진을 만나자 머리를 공손하게 숙이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패트릭보위 초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렇게 예의바르지 않았다. 교실 안은 항상 시끄러웠고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교사들이 수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학생들에게서 주의력 결핍 현상도 자주 나타났고 학교에서 서로 싸우는 일도 많았다.

이민자 출신 자녀가 많이 다니는 이 학교는 히스패닉계가 전체의 절반가량 된다. 시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의 저소득층 비율은 80%에 이른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학기 태권도를 정식 체육과목으로 채택하면서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4학년 담당교사인 비비언 아이켈린(여) 씨는 “이전에는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는 비율이 약 75%였는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100%로 높아졌다”며 “이것은 기적”이라고 놀라워했다.

새뮤얼 칼린 교장도 “아이들이 태권도를 통해 규율과 절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며 “태권도로 인한 성적향상 효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교에서 태권도는 정식 체육과목이라 학점도 부여된다.

김 관장을 포함한 태권도 사범들은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끊임없이 자기통제와 예절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이와 함께 숙제하기, 책상 깨끗이 정리하기 등 ‘기본’을 강조한다.

4학년생인 제이콥 군은 “전에는 집에 가면 동생들과 자주 싸웠다. 하지만 태권도를 배우면서 바르게 행동하고 동생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의 루이스 군도 “이제는 숙제를 끝내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항상 태권도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패트릭보위 초등학교의 변화는 매사추세츠 주 일대에서도 큰 화제를 낳았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아이들이 달라졌다는 입소문이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퍼지면서 체육과목 시간에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는 학교가 쇄도하고 있다.

데벌 패트릭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최근 이 학교를 방문해 태권도가 가져온 변화를 직접 목격한 뒤 주 정부 교육부에 태권도 프로그램 확대를 지시했다.

스프링필드와 치커피 일대 26개 공립 초등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김 관장은 “태권도 교육을 담당할 사범이 부족해 요구에 모두 응할 수가 없다”며 “현재 대기명단에 올라 있는 학교가 30여 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치커피=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