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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고대문명교류사

입력 | 2008-03-13 03:03:00


《현실적으로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세계사적 의의는 하나가 된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벙어리 대화’만 해 오던 이질 문명들이 서로 떳떳이 만나 나눔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바야흐로 인류는 서로의 어울림과 주고받음에서만 생존과 번영의 활로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증유의 교류 확산 시대를 맞고 있다. 교류를 떠난 문명의 생존은 상상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문명교류사 연구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다.》

교류-소통으로 풀어낸 인류문명사

1996년 11월 28일 서울지법 1심 형사 법정. 그는 고개를 숙이고 최후 진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컴퓨터에 입력된 ‘고대문명교류사’의 원고만은 살려서 학계에 남기고 싶다.”

본명 정수일. 조선족 2세로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수석 졸업했으며 국비장학생으로 이집트와 모로코에서 유학했다. 중국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포섭된 뒤 무하마드 깐수라는 아랍인 2세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으며 교수 신분으로 간첩 활동을 하다가 구속됐다. 그는 1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형 생활을 하던 중 사면됐으며 현재는 연구 및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고대문명교류사’는 서양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독자적 시각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인류의 문명사를 왕조의 흥망이나 문명진화론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교류’라는 실을 이용해 각 문명사를 보편사로 꿰어내고 있다.

그는 세계를 서양과 동양으로 나누는 일반적 구분이 유럽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유럽 외의 방대한 지역을 자의적으로 동양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것. 문명교류사는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아니라 유럽 중동 중국 등 여러 문명이 다원적으로 교류와 나눔을 행했다는 것이다.

문명교류사 연구의 필요성은 오래전에 제기돼 왔지만 중국 아랍 페르시아 유목민족 유럽 등 각 문명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언어 해독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다.

교류사의 관점에서 보면 유목민의 역사도 재해석된다. 스키타이-흉노-훈으로 이어지는 고대 유목기마 민족은 정착문명에 의해 야만 혹은 주변문화로 취급됐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일뤄 냈고 때로는 침략으로, 때로는 무역으로 방대한 지역의 교류를 중개했다는 의의를 재평가했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거나 고정관념에 빠졌던 것에 대해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보여 준다. 2세기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중국에 공식 사절을 보낸 의미나 당나라 때 이미 동방기독교의 일파가 전파돼 기독교적 의식이 뿌리내렸다는 점도 보여 준다.

한국사 측면에서도 그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경주에서 출토된 유리병과 로마제국의 로만 글라스의 관계, 불국사에서 출토된 석십자가와 고대 기독교의 연관성을 밝혀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신라의 의미를 부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을 거부한다.

“때로는 후진 문명에 대한 선진 문명의 이동이 일방적인 것처럼 비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후진 문명이 선진 문명을 앞질러 반(反)이동할 수 있음을 역사적 사실이 실증하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