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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시시각각 비우고 떠나라

입력 | 2008-03-13 03:03:00


내 차를 소개한 딜러가 매달 홍보 DM(direct mail)을 보내온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과 상식 등 소중한 내용이 담겨 있어 눈여겨보곤 한다. 이번에 배달된 DM엔 ‘자동차 차량연료 줄이는 법’을 소개하면서 “차 뒤 트렁크를 열어보십시오. 그 안에 불필요하게 싣고 다니는 것은 없는지”라고 묻는 내용이 있었다. 필요 없는 짐 때문에 연료 소모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혹시 하고 트렁크를 열었더니 몇 달째 신지 않는 구두며 옷가지, 책 등이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동안 싣고 다닌 거리가 짧지 않았으니 그만큼 연료를 낭비한 셈이다.

이처럼 부질없는 짐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차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사람도 필요 없는 짐을 지고 다니다 낭비하는 힘이 무량하다. 마음공부를 한다는 나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세월을 회고하면 굳이 갖고 오지 않았어도 될 마음을 오랫동안 지녀왔고, 지금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비워내지 않는 한 줄곧 마음의 짐으로 남는다.

문제는 내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줄 모르거나,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께서는 “어떠한 사람이 눈이 밝은가. 자기의 그름을 잘 살피는 이가 참으로 눈 밝은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니 참마음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참마음을 알지 못하면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좌선을 마치고 마음을 반조(返照)하면서 “너, 몇 년 살았니?” 하고 물어보았다. 태어나 이름을 받고 살아온 세월,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세월, 전무출신(원불교 성직자)이 된 세월, 여러 인연과 맺어진 세월을 생각해 보니 나는 하나인데 그 모습이 참 다양하다.

오늘도 아침에 이 몸을 일으켜 내 마음이 이 몸을 운전하고 다닌다. 그런데 그 몸 안에 굳이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될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때마다 비우고 떠나기를 반복해야 한다. 비우고 떠나는 일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만 할 일이 아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이르기 전, 하루 생활을 참회하면서 미리 비우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비우고 떠나기.’ 그것은 참으로 눈이 밝아 자각하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할 마음공부다.

나상호 교무 원불교 교정원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