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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보다 화마와 싸워야 하는데…”

입력 | 2008-03-12 02:59:00

뇌출혈로 쓰러졌던 이수호 소방관이 11일 경기 평택시의 병원에서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성호 기자


이천화재때 뇌출혈로 쓰러졌던 이수호 소방경

대수술 뒤 기억상실… “현장으로 가야지” 걱정만

“2, 3일이면 퇴원할 텐데 뭐,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야지.”

언제 아팠느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멀리서 온 친구를 반갑게 대하는 듯한 표정.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았다. 경기 안성소방서 진압대장 이수호(56) 소방경. 7일 오후 평택시 예솔병원에서 만난 그는 건강해 보였다.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 만이다.

이 소방경은 당시 현장에 출동해 사흘간 쉬지 않고 일했다. 현장에서 돌아온 뒤 1월 9일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뇌출혈 증세로 충남 천안시 단국대병원에서 대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예전의 몸 상태를 거의 회복하자 주위에서는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말에는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보호자의 부축을 받아 병실 안팎을 걸어 다니며 재활치료에 한창이다.

몸만 회복했을 뿐 기억력은 예전만 못하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기억상실 증세를 보인다.

이천 화재에 대해 묻자 “쉬다가 출동 명령 받고 나갔는데…잘 기억이 안나. 막 현장으로 들어가려다 쓰러진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며칠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하고 통화를 했어. 당선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직접 전화를 걸었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바뀐 사실도 그의 뇌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아내는 중국에서 공부하려는 막내아들과 함께 2년 전 출국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귀국했던 이들은 최근 돌아갔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그는 후배들을 걱정했다.

“더 나은 업무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 나중에 퇴직하면 열악한 의용소방대 일을 돕고 싶은데….”

예솔병원 심재봉 원장은 “약물과 재활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좋아지더라도 현직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성소방서 이종각 소방행정담당은 “내년 6월이면 이 소방경의 정년”이라며 “쉽지 않겠지만 반드시 건강을 회복해 복귀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평택=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