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례문 ‘폐허’ 찾은 최기영 대목장
지난해 9월 경복궁 광화문 복원공사를 총지휘할 도편수를 놓고 다른 대목장(大木匠)들이 팽팽하게 맞섰을 때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던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이 속상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우리네 삶은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을 알수록 오래된 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숭례문이 바로 그 의지하고 싶은 대상이었는데….”
국내 처음으로 백제5층목탑을 재현한 사원 건축의 대가로 꼽히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최기영(63·사진) 대목장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최 대목장은 10일 밤 11시경 텔레비전 뉴스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을 뛰쳐나가 숭례문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으로 몸이 후들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길로 무너져 내리는 누각을 봤을 때, 최 대목장의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불길 속에 녹아내리는 숭례문 광경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내 선조가 우리 국민에게 가장 소중한 국보 1호 축조를 총지휘하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평생 자랑스러웠는데…. 우리 조상들이 당대 모든 지혜와 기술을 총동원해 남긴 문화유산을….” 그는 말을 잊지 못했다.
최 대목장의 20대조 할아버지는 조선 초기 판한성부사(지금의 서울시장 격)를 지낸 최유경(1343∼1413). 최유경은 판한성부사로 있으면서 숭례문 축조를 지휘했다. 최 대목장에게 숭례문의 전소는 고건축 전문가로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을 잃은 슬픔에다 선조의 땀이 어린 유산을 잃은 안타까움까지 겹친 셈이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을 이렇게 훼손해선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전통 건축물을 해체, 보수하며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건축물 어느 한 부분을 봐도 현대 건축기술이 따라가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으니까요.”
최 대목장은 11일 오전 열린 긴급 문화재위원회 회의에 신응수(66) 대목장과 함께 참석했다. 숭례문 복원에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문화재청에서 연락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며 “복원 과정에서 문화재위원들이 파악하지 못한 부분을 우리 대목장들이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정밀 실측한 도면이 있어 다행히 원형 복원이 가능합니다. 복원에 필요한 금강송도 강원도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희망을 생각해야죠.”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정영준,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