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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문화 쟁점]무용-음악계

입력 | 2008-01-08 02:52:00

남성 무용수가 없다면 이런 안무가 가능할까? 국내 무용 및 음악 콩쿠르 우승자에게 주어졌던 병역특례를 없애는 병역법 시행령 개정안이 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무용계는 남성 무용수 기근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새해부터 공연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는 병역문제다.

남성 무용·음악가에 대한 병역특례 축소 내용을 담고 있는 ‘병역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기존 국내 주요 콩쿠르 우승자에게 주어졌던 병역 혜택(현역 대신 공익근무요원으로

34개월 복무)을 없애고 국제대회 우승자에게만 혜택을 주되 국악과 한국무용 등

국제대회가 없는 분야만 기존 국내대회를 인정하고 있다.》

■이슈

남성 무용수 부족한데 병역특례마저 축소

■해법

국내 콩쿠르 인정해 혜택자격 늘려야

최태지 국립발레단장과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 무용계 인사들은 7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며, 남성 무용수들의 모임인 남성무용포럼도 7일 반박 성명을 냈다.

▽무용계=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무용, 그중에서도 특히 발레다. 통상 발레리노는 정년이 40세로 여겨질 만큼 무용수로서 생명이 짧다. 군악대가 있는 음악 분야와 달리 남성 무용수들은 군대에 가면 특기를 보장받을 수 없어 2년간의 공백은 거의 치명적이다. 훈련 때 사용하는 근육과 무용의 잔 근육은 다르기 때문이다. 제대 이후 무용을 아예 포기하는 무용수도 많다. 발레계는 “개정안은 남성 무용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남자 무용수 중에는 가장 권위 있는 국제 발레 콩쿠르로 꼽히는 바르나 콩쿠르, 모스크바 콩쿠르, USA(잭슨) 콩쿠르 그리고 주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로잔 콩쿠르 등의 우승자는커녕 본선 진출자도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해외 주요 콩쿠르를 휩쓸고 있는 국내 발레 유망주들은 모두 여성이다.

최 단장은 “발레는 조기 교육이 중요한데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시작하는 여성 무용수와 달리 한국 남성 무용수들은 대부분 고등학교에 가서야 뒤늦게 시작하기 때문”이라며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한국 남성 무용수들이 우승을 하기엔 실력 차도 큰 데다, 한두 개 작품만 준비해도 되는 국내 콩쿠르와 달리 국제 콩쿠르는 많을 경우 5, 6개 작품까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콩쿠르 참가비와 체재비를 비롯해 안무비 등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우려했다.

남성무용포럼의 김긍수 대표는 “남성과 여성 무용수의 비율이 2 대 8 정도로 불균형이 심각하다”며 “남성 무용수가 없으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없는데도 국내 콩쿠르의 병역특례 혜택이 없어지면 남성 무용수의 기근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남성 무용수를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전체 남성 무용수 21명 중 52%인 11명이 외국 발레리노다.

▽음악계=음악계는 유수의 국내 콩쿠르는 인정하지 않고 국제대회만 병역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문화 사대주의’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콩쿠르의 경우 참가비가 15만 원 안팎이지만 해외 콩쿠르는 한 번 참가하는 데 300만∼500만 원이나 들기 때문에 빈부 격차에 의한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철구 한국음악협회 이사는 “국내대회가 외국 콩쿠르보다 입상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도 외국의 잣대만 중요하다고 하면 국내 음악교육에 대한 불신과 조기유학 붐이 일어날 수 있다”며 “특히 재능은 있지만 외국 콩쿠르에 참가할 경비가 없는 학생들은 예술의 꿈을 접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최규용 한국음악협회 사무총장은 “매년 많아야 국내 음악콩쿠르에서 11명, 국내 무용대회에서 11명 등 20여 명만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뿐”이라며 “병역법의 국내대회 홀대 시행령은 예술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달리 관악기처럼 국제콩쿠르 자체가 드문 경우는 고려하지 못한 개정안”이라고 지적했다.

▽대안 및 개선 방안=지난해 예술인 병역특례 문제가 논란이 되자 한국무용협회 한국음악협회 한국국악협회 등이 합동 토론회를 여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으나 정작 시행령 통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문화관광부는 “시행령 통과가 예상되니 대책을 내달라고 각 단체와 미리 협의했다”고 밝혔지만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한국음악협회 등 관련 단체는 “특례 대상이 될 주요 국제 콩쿠르를 추천해 달라는 공문만 받았을 뿐 문화부에서 시행령 통과에 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며 “최근 시행령이 공포된 뒤에야 (문화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문화부 공연예술팀 이용신 사무관은 “2월까지 병역특례 대상으로 인정할 만한 국제 콩쿠르를 병무청과 상의하고, 기존 병역특례 혜택이 주어지던 국내대회를 국제대회로 만드는 방안 등 추가 대책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은 통과됐지만 아직 병역특례 대상 콩쿠르와 입상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콩쿠르를 준비하는 이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음악협회는 “올해 5월에 예정된 음악협회가 주최하는 콩쿠르는 이미 지난해에 병역 혜택이 주어진다는 내용의 공고가 나갔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유학생 중에도 병역 혜택 때문에 콩쿠르 준비를 해온 이가 많은데 당장 올해 콩쿠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유예 기간을 요청했다.

남성무용포럼도 7일 성명에서 “차세대 남자 무용수들이 국제 콩쿠르를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 5년의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무용계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국제대회 2위 이상 수상자로 돼 있는 자격 조건을 3위 이상 입상자로 확대할 것과 △병역 혜택 대상 국제 콩쿠르를 폭넓게 인정하고 △현대무용의 경우 국제 콩쿠르는 개인의 기량보다 전체 작품 위주로 심사를 하는 만큼 개인 기량을 겨루는 기존 국내 콩쿠르를 계속 인정해 줄 것 △군악대처럼 군에서 무용을 계속할 수 있는 군무대(軍舞隊)를 창설 등을 대책으로 요구하고 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립극단 법인화 여부…연극계 ‘뜨거운 감자’

올해는 국립극장 산하 단체인 국립극단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극단의 법인화는 김명곤 전 국립극장장 시절에 추진됐으나 내부 반발에 부닥쳐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실용과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법인화 논란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이 오래전에 법인화를 거쳐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데다, 국립극단 법인화 논의의 계기가 된 명동 국립극장이 내년 초 완공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극단 내부에서는 “예산이 늘어나고 운영이 합리화될 것”이라는 의견과 “시장 논리가 예술성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논리가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국립극단의 문제점은 배우 ‘종신제’. 국립극단은 공연마다 ‘상시평가제도’를 운영하는데 3년 동안 연달아 경고 3회면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4년 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퇴출된 배우는 한 명도 없어 ‘사실상 종신제’다.

지난해 국립극단의 총예산은 13억 원으로 이 중 10억 원은 배우들의 인건비로 사용됐고, ‘황색여관’ 등 4편의 공연 제작비로 쓰인 돈은 3억 원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경쟁이 없고 발전이 없는 공무원 조직” “한정된 단원으로 작품을 만드는 까닭에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가 역할을 맡는 등 작품의 질도 하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극단의 한 배우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한국 연극이 자생력을 갖지 못한 상황인데, 상업적인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된 환경에서 예술적인 작품을 할 수 있는 국립극단을 독립시키면 연극계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립극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는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는 예술감독제를 강화해 작품에 맞는 배우들을 시즌별로 선발한다”고 말했다. 김철리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은 “국립오페라단이나 국립발레단도 법인화된 뒤 다른 민간단체와 발전적 경쟁을 하면서 기량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