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영토전쟁 이끌어 갈 ‘글로벌 빅3’키워라
상위 3개업체가 시장 좌우… M&A통해 몸집 불려야
제조업만으론 성장 한계… 서비스로 수출다각화 절실
떠오르는 블루칩 중남미-阿 시장, 환경산업도 노릴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08년은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는 희망의 해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온갖 명목의 규제에 기업을 하려는 의욕은 위축됐고 경제를 움직여야 할 성장 동력은 식어 갔다. ‘한강의 기적’을 뒤로 한 채 ‘저(低)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의 미래는 앞으로 10년에 달려 있다는 위기의식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새해는 상실의 악순환에서 성취의 선순환으로 바뀌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제3의 갈림길에 선 ‘주식회사 대한민국’ 경제가 힘차게 다시 도약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와 대안을 △기업 △공공부문 △연구개발(R&D) △고령화와 개방 △금융 △국가마케팅 △인재 등 7개 분야별로 시리즈를 통해 점검한다.》
#1
신세계는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 부사장급이 지휘하는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 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세계에서 가장 싸고 질 좋은 물건을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팔기 위한 포석이다. 박찬영 신세계 수석부장은 “2008년 핵심 사업이 ‘글로벌 전략’”이라며 “5년 뒤면 중국의 이마트 매장이 한국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2
경기 성남시에 있는 특수코팅 소재 회사인 SSCP는 1810년 설립된 독일의 자동차 특수 코팅재 전문기업 슈람을 최근 7000만 유로(약 910억 원)에 인수했다. 2002년 가업(家業)을 물려받은 오정현(36) 사장은 “선진 기술력을 확보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면 중소기업도 변신해야 한다”며 “글로벌 기업과 정면승부를 겨룰 것”이라고 말했다.
물리적인 국경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21세기, 국부(國富)의 크기는 기업들의 활약상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글로벌 경제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주목한 한국 기업들은 세계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 영토’를 넓히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병욱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어디서 만들었느냐는 ‘메이드 인(Made in)’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누가 만들었느냐는 ‘메이드 바이(Made by)’의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 ‘글로벌 빅3’가 국부 창출
“건설·기계 분야의 ‘글로벌 톱3’로 도약하겠다.”
두산그룹은 최근 세계 건설기계 시장의 ‘빅3’ 도약을 선언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7월 미국의 건설장비 업체인 밥캣을 인수해 세계 17위에서 7위 업체로 올라섰다.
글로벌 시장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급변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0년 세계 19개 업종 상위 5개 업체의 3분의 1 이상이 2005년엔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5년 세계 42개 업종의 빅3 기업 중 27곳은 2000년만 해도 해당 분야에서 ‘글로벌 빅3’를 보유하지 못한 국가의 기업이었다. 기업이 국가의 경제 영향력 판도까지 바꾼 것이다.
한국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가 2005년에 유일하게 글로벌 빅3에 새로 포함될 정도로 ‘글로벌 영토 확장’이 더딘 편이다. 국내 수출액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어렵다.
절삭공구 제조업체인 YG-1의 송호근 사장은 “미국 영국 프랑스 공구업체를 M&A한 경험이 있지만, 글로벌 M&A 전문 서비스업체를 이용하는 일본과 달리 별다른 지원책이 없어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 수출 영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삼일회계법인은 올해 경영 목표로 ‘외화 획득’을 내걸었다. 회계감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일본으로부터 로열티를 받고 있고 베트남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에 회계사 90여 명을 내보냈다.
지평과 정평 등 국내 법무법인도 최근 베트남에 진출한 데 이어 중앙아시아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서비스수지 적자가 2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글로벌 전략을 서비스업 분야로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인력의 현지화도 필요한 과제로 꼽힌다.
컴퓨터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는 2007년 중국 법인장을 현지인으로 교체한 뒤 중국 진출 5년 만에 흑자 전환을 내다보고 있다.
박경미 휴잇어소시어츠 한국지사장은 “한국에서 성공한 방식이라는 이유로 해외에서도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전략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 ‘넥스트 프런티어’와 ‘그린오션’에 승부 걸어야
“아프리카 도로 건설 현장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잠비아 정부 청사는 중국이 지어 줬다고 하더군요. 청사 회의실 벽면을 동양화 벽화로 마감한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해 11월 아프리카를 방문한 이한호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은 미지의 땅인 이곳에서 ‘샌드위치 한국’의 처지를 실감했다. 그는 “현지의 자원 개발과 한국의 플랜트 기술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새마을 운동’ 등 국가 브랜드를 활용하는 한국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유럽 중국 등에 집중된 한국 기업의 ‘글로벌 영토’를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 새롭게 떠오르는 ‘넥스트 프런티어’ 시장으로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환경 등 ‘그린오션(Green Ocean)’ 산업은 향후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려면 국내 산업계도 전자전기와 철강 중심의 구도에서 벗어나 신규 업종에 과감히 진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印철강사 2위업체 사들여 단숨에 세계1위로
佛제약사 300여차례 인수합병 통해 빅3 도약▼
국내 기업들은 비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첨단 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뒤늦게 나마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의 비(非)메모리 반도체회사인 ‘트랜스칩’을 인수했다. 이는 1994년 삼성전자가 미국의 컴퓨터회사인 AST를 인수한 뒤 핵심 인력 이탈로 ‘쓴맛’을 본 뒤 13년 만에 다시 외국 기업을 사들인 것이어서 화제가 됐다.
전자업계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설계 인력 60여 명을 보유한 트랜스칩에서 기술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의 성장=자체 기술 개발’이란 불문율을 과감히 깼다고 해석한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 전기도금강판 생산업체인 MEGS사의 지분 6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포스코의 해외 기업 M&A는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일본 소니 등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세계 주요 가전업체의 강판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M&A가 모험을 꺼리는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산업의 판도를 바꿀 만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해외 글로벌 기업 중에는 M&A로 몸집을 불려 해당 산업의 강자로 등극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인도 철강업체 미탈은 2006년 철강업계 2위인 프랑스 아르셀로를 인수해 생산량을 1억1800만 t으로 늘려 단숨에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세계 2위와 3위인 일본의 신일본제철(3370만 t)과 JFE스틸(3200만 t)이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다.
프랑스 제약회사인 ‘사노피-아벤티스’는 무려 300여 차례의 M&A를 통해 세계 3위로 우뚝 섰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기약 없이 쏟아 붓는 것보다는 연구개발(R&D) 능력이 뛰어난 기업을 인수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전 세계 전자제품 매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가 붙은 노트북이 잘 팔리는 것은 더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중국 레노보(롄샹·聯想)는 2005년 미국 IBM의 개인용컴퓨터(PC)사업부를 인수해 세계 3위의 PC제조업체로 거듭났다. IBM의 기술력 및 브랜드와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결합해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