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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81년 이윤상 군 살해 주영형 검거

입력 | 2007-11-30 02:59:00


“차마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것은 교사들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경찰은 수사의 ‘해결’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미해결’보다 오히려 괴로운 해결의 종장이었다.”

1981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사설이다. 무엇이 우리 모두를 그처럼 부끄럽고 괴롭게 만들었을까. 전날 ‘제자를 죽인 스승’이 범죄를 자백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전 가을, 서울 경서중학교 체육 교사였던 주영형은 1학년 제자 이윤상 군을 자기 집으로 유괴했다. 방과 후 성적 상담을 하자는 말에 윤상 군은 의심 없이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윤상 군은 온몸이 묶이고 입에 재갈을 문 채로 감금된 지 사흘 만에 탈진해 질식사했다. 그는 내연관계에 있던 여고생 제자 두 명도 범행에 끌어들였다. 시신을 북한강변에 함께 암매장했고 윤상 군 부모를 협박해 돈을 요구하도록 시켰다. 도박 빚 1000만 원을 갚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출신으로 자상하고 열정적인 교사라는 평을 받던 주영형이 제자를 유괴하리라곤 경찰도 상상하지 못했다. 참고인 자격으로 그를 수차례 조사하고도 경찰은 ‘업은 아이 3년 찾는’ 우를 범했다.

1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윤상 군의 사연은 온 국민의 애를 태웠다. 윤상 군은 어느새 모든 이의 아들, 오빠, 동생이 되어 있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다음 달까지 윤상이를 보내 주면 선처하겠다”는 특별담화까지 냈고, 어느 앵커는 “윤상이 어머니는 누구를 위해 생선을 굽겠느냐”며 무사귀환을 호소했다.

‘두 얼굴의 선생님’도 거짓말 탐지기만은 속이지 못했다. 그가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여제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영형은 용의선상에 올랐다. “사건 당일 윤상이를 만났느냐”는 추궁에 그는 결국 무너졌다. 거짓말 판정 사흘 만인 1981년 11월 30일 주영형은 범행을 자백했다. 사건 발생 1년 17일 만이었다.

주영형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서 기독교에 귀의한 주영형은 “하나님 품에 안겨 평온한 마음으로 떠나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길 빈다”는 말을 남기고 교수대에 올랐다. 윤상 군 가족의 용서도 받지 않은 채 그는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은 듯했다. 그 부조리에서 일부 모티브를 갖고 온 이청준 소설 ‘벌레이야기’가 올해 칸 영화제 수상작 ‘밀양’의 원작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