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험생들이 수능 가(假)채점 점수를 내면서 고3 교실과 재수생 학원가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등급제의 가장 큰 모순은 총점은 높은 학생이 등급은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다.
메가스터디가 예상한 등급 점수를 적용해 보면 A 학생이 언어와 수리 ‘나’에서 만점을 받고, 외국어에서 94점을 받았다면 언어·수리는 1등급이지만 외국어는 2등급으로 추정된다. 반면 B 학생이 언어·수리에서 92점을 받고, 외국어에서 98점을 받는다면 세 과목 모두 1등급이다. 총점이 12점이나 높은 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대학 서열이 되레 낮아지는 모순이 생긴다.
청솔학원이 6월 모의평가 최종 성적을 토대로 인문계 8000여 명, 자연계 5500여 명의 수능 성적을 분석한 결과 같은 등급끼리도 원점수가 최대 83점까지 벌어지고 평균은 55점 차가 났다. 여기에다 학교 간 학력차가 엄연한 현실에서 내신마저 9등급으로 제공된다. 교육부가 간섭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학생을 선발해 보라는 대학들의 하소연이 백번 이해된다.
이상한 제도 때문에 수험생과 학부모가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 가채점 점수를 알고 있어도 이번 입시에서 점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점수에서 등급이 갈릴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지원전략을 짜기도 어렵다. 대학입시가 운에 따라 당첨되거나 떨어지는 로또와 다를 바가 없다.
‘평등코드’에 사로잡힌 교육혁신위는 3년 전 ‘2008 입시제도’를 마련할 때 수능 무력화와 대학 평준화를 목적으로 5등급 수능을 밀어붙이려고 했다. 대학들은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15등급 이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나마 5등급으로 안 간 것이 다행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9등급 수능도 무리임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
전국 학생들이 3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수능을 치렀으면 그 점수를 그대로 활용하면 될 일이다. 지금 인터넷에는 ‘등급제 폐지’ 요구와 함께 교육부를 폐지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수능 등급제를 주장한 평등코드론자들은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이런 불합리한 입시제도는 한시바삐 뜯어고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