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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터키 케말 아타튀르크 사망

입력 | 2007-11-10 03:01:00


터키에서 11월 10일 오전 9시 5분(한국 시간 오후 4시 5분)은 모든 것이 정지하는 시간이다.

1938년 이 시간에 이스탄불 돌마바체 궁전의 집무실에서 57세의 짧은 삶을 마감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리기 위해서다. 국기를 반쯤 내려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고 궁전의 시계들은 영웅이 떠난 시간에 모두 멈췄다.

우리에게 ‘케말 파샤’로 더 잘 알려진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혁명가, 위대한 통치자였다. 터키의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겼고, 아라비아 문자에서 알파벳으로 표기규정을 바꿨다. 종교재판을 폐지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했다.

1881년 그리스 테살로니키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무스타파’로 불렸다. 1904년 사관학교에 진학한 뒤 군사학과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영리하다’ ‘완벽하다’는 뜻의 ‘케말’이란 새 이름을 얻었고, 이후 장군을 뜻하는 칭호인 ‘파샤’가 붙어 ‘케말 파샤’가 됐다.

당시 터키인들에게는 성(姓)이 없었다. 이후 대통령이 된 케말이 모든 국민에게 성을 갖도록 했고 1934년 대국민회의는 그에게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라는 성을 헌정했다.

사관학교 시절 오스만튀르크의 전제왕정인 술탄제 폐지를 주장하는 청년터키당에 가입했던 케말은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한직으로 배치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선에 투입된 그는 가장 치열했던 갈리폴리 전투에서 동맹인 독일군과 함께 영국 프랑스 호주 등 50만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했다. 이 작전의 실패로 당시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옷을 벗었다.

그러나 결국 독일은 패망했고, 술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연합군의 분할 통치를 받아들였다. 이에 전쟁 영웅 케말은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해 혁명을 일으켰고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의 점령군을 차례로 터키에서 몰아냈다.

1923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케말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헌법조항을 삭제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술탄제를 폐지하고 여성의 차도르 착용도 금지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온 전통과 문화를 단 한 번의 혁명으로 바꿀 수는 없는 법. 최근 터키에 감돌고 있는 전운에 이슬람 원리주의와 케말리즘의 갈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영웅도 민중의 의식을 성급히 개조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