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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 연기 예지원 “신들리다 만 점쟁이역 딱 내 적성”

입력 | 2007-10-23 03:03:00


이 여자 희경(예지원). ‘아란샤’라는 점집을 운영하는 점쟁이지만 귀신을 무서워한다. 3류 극단의 객원 배우로 신기(神氣)보다 연기(演技)로 점을 보고 진짜 명품으로 ‘처바른’ 여자들을 보면 화가 나 ‘더 파이어!’를 외친다. 그것도 양팔을 높게 벌린 채.

경영난에 허덕이는 ‘호돌이 태권도장’ 사범 무열(이민기), 게으른 만홧가게 주인 용수(류승수) 등 언뜻 보기에도 ‘덜떨어진’ 세 남녀가 샴쌍둥이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 바로 KBS2 ‘얼렁뚱땅 흥신소’(월, 화요일 오후 9시 55분)에서다. 이달 8일 첫 방송 이후 매주 월, 화 SBS ‘왕과 나’, MBC ‘이산’ 등 대하 사극에 끼여 시청률은 한 자릿수. 하지만 ‘사극 피로’에 시달리던 시청자들 사이에서 간만에 개성 있는 드라마를 만났다는 평이 나온다.

감히 모방하기 힘든 이들 캐릭터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예지원(34·사진).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역시 그답게’ 머리에 분홍 꽃을 달고 나타났다. 다른 드라마에 비해 ‘양념’처럼 취급되는 로맨스 장면을 찍다 왔단다. 극중 배역과 달리 “점도 볼 줄 모르고 명품도 안 밝힌다”는 걸 빼면 희경은 그 자체로 예지원이었다.

“그냥 점쟁이 역할이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어릴 적 신들렸다가 왕따 당하고 신기가 사라지자 되레 귀신을 무서워하게 됐죠. 한마디로 신들리다 만 ‘짝퉁’ 점쟁이라고나 할까. 이 캐릭터 정말 예술 아니에요? 예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배역 보는 눈은 있다니까요.”

‘귀여워’의 순이, ‘올드미스 다이어리’(2006년)의 미자, ‘죽어도 해피엔딩’(2007년)의 지원 등 최근 출연작을 보면 배역을 고르는 그의 감식안은 참 독특하다. 오죽했으면 ‘4차원 배우’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얼마 전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 코너에 출연해 천연덕스럽게 부른 샹송 ‘파롤레 파롤레’는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그는 “그 후로 결혼식에서 축가로 불러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며 “남녀가 싸우는 내용의 노래인데 그럴 순 없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얼렁뚱땅 흥신소’에는 왕들의 권력 암투도, 남녀 간 삼각관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제작진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까지 황금을 찾기 위한 좌충우돌이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각자의 상처도 조심스럽게 들춰질 예정이다.

“대본을 보면 지문이 ‘너무나 할 일이 없어서 앉아 있는 그들’ ‘쭈쭈바나 먹고 있는 그들’. 이런 식이에요. 솔직히 남들 앞에 나서기 창피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아주 당당해요. 독특하지만 각자의 진솔한 삶이 담겨 있어서 좋은 평가가 나오는 게 아닐까요?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무한 재방송을 하니 언젠가는 봐 주겠죠.”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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