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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경영]파리 시민들 자전거 공짜로 타세요

입력 | 2007-09-17 03:01:00


옥외 광고업체 ‘JC 드코’ 공공간판 사용대가로 시내에 1만 대 설치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회사원 프레데리크 가엘 씨는 9월부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가 환경주의자여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가 지하철이나 버스보다 싸기 때문이다.

파리 시내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동시에 탈 수 있는 한 달짜리 정기권인 ‘카르트 오랑주’를 사면 53.5유로(약 6만8000원)가 든다. 그러나 파리 시의 공용 자전거를 이용하면 한 달이 아니라 1년에 29유로(약 3만7000원)가 들 뿐이다. 29유로도 한 번 사용에 30분을 초과할 경우에 대비한 선불이다. 30분 이하로만 사용하면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타고 가서 아무 데나 반납할 수 있는 공용 자전거여서 개인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편리하다.

○ JC 드코, 버스 정류장에 광고 첫 도입

파리 시내 곳곳에 300m 간격으로 촘촘히 놓인 750여 개 무인 자동대여소에 있는 자전거 약 1만 대는 옥외광고 업체 JC 드코가 제공했다. 연말까지 2만 대를 더 늘릴 계획이다. 유지 보수도 모두 JC 드코가 책임진다. JC 드코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엄연히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JC 드코는 자전거를 제공하는 대가로 파리 시로부터 공공간판 1628곳의 독점 사용권을 얻었다. 그렇다면 파리 시민이 사용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시가 얻을 수 있는 공공간판 대여 수익이 줄어든 만큼 실제로는 돈을 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옥외 광고는 시 정부가 관리를 맡아서는 새로운 수익처를 만들어 내기도 쉽지 않고 도시 외관을 해치지 않는 미적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파리 시가 JC 드코의 자전거를 제공받고 공공간판을 맡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JC 드코는 공공간판의 대명사격인 버스 셸터(bus shelter·버스 정류장의 간이 시설)와 광고를 결합시킨 최초의 회사다. 이 회사는 1964년 리옹 시민을 위해 처음 버스 정류장에 셸터를 만들어 주고 셸터에 광고를 넣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버스 정류장에는 비를 막아 줄 차양도 없고 앉을 자리도 없었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 줄 볼거리도 없었다. JC 드코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버스 정류장에서 고객에게 이익이 되면서도 기업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옥외 광고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했던 것이다.

사실 블루오션 개념을 만들어 낸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한국인 김위찬 교수와 르네 모보르뉴 교수가 자신들의 책 ‘블루오션 전략’에서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 제시한 것이 바로 JC 드코다. 버스 셸터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버스 셸터에는 광고와 함께 ‘JC 드코’란 글씨가 새겨졌다. JC 드코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 마치 버스 셸터를 뜻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였다.

○ 고객경영에서 새 블루오션 찾다

블루오션은 곧 레드오션으로 변하는 법이다. 버스 셸터가 시의 수익 중 하나로 굳어지면서 JC 드코도 경쟁 업체의 도전에 직면했다. 일부 시에서는 버스 셸터에서 JC 드코란 글씨를 빼기 시작했다.

JC 드코는 고객 경영으로 대응했다. 회사는 광고를 봐 주는 시민에게 무료에 가까운 자전거를 제공하기로 했다. JC 드코는 일단 2년 전 2005년 리옹에서 공용 자전거 시스템을 실험했다. 성공이었다. 공용 자전거 운동은 196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회공학자 류트 심멜펜니크 씨가 동료들과 함께 수백 대의 자전거를 모아 흰색 페인트로 칠한 후 시내 곳곳에 놔두고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백색 자전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도둑맞고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비슷한 운동이 199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와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도 있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JC 드코는 첨단 기술을 도입해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자들의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 첨단 전자기술로 운영되는 무인 대여소가 사용자의 신원과 신용카드 번호를 확보해 자전거가 제대로 반납되지 않으면 150유로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완전 무료로 하는 대신 30분을 초과할 경우 얼마씩 내도록 해 회전율이 빨라지도록 한 것도 공용성을 보장하는 데 기여했다. JC 드코는 파리에 이어 뮐뤼즈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 브장송 등과 계약을 체결했다. 런던 바르셀로나 스톡홀름 등도 JC 드코의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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