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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치 풍자에 ‘뼈’가 없군

입력 | 2007-09-06 03:02:00


“황제가 되고 당신이 한 짓은 TV에 나가 젊은 기자 검사 학생들과 토론하고 인터넷에 댓글이나 올리고 우방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쌀이고 시멘트고 퍼준 것밖에 더 있어요?” 황제의 무능을 보다 못한 부인이 히스테리컬하게 소리 지른다.

지난달 29일 막을 올린 ‘정말, 부조리하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 부조리극. 이윤택 씨가 극본을 쓰고 채윤일 씨가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원작 ‘로물루스 대제’를 번안해 재구성했다.

정치보다는 인터넷에 댓글을 달고 역사소설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한 황제. 외환은행을 팔고 해외로 도망간 재무장관, 대중음악에 심취한 황제의 딸 ‘보아’, 북쪽과의 대치 상태, 통일을 위해 작가 ‘황구라’를 따라 북에 갔다가 남북 양쪽에서 외면받는 ‘윤군’ 등과 같은 설정은 이 작품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채게끔 한다.

그러나 번안극의 한계였을까. 풍자를 통해 가슴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방해하는 일부 부자연스러운 설정은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가져온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닭이나 키우는 황제’라는 인물 설정과 이 작품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 대통령은 시종 어긋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듯 “교수들 앉혀 놓고 토론을 즐기고 당신이 그렇게 똑똑해?”등 풍자 대상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대사들이 주요 대목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직설적인 대목은 ‘그런 듯 아닌 듯’ 비유와 비틀기를 통해 재미를 주는 풍자의 맛을 반감시키며 모처럼 무대에 오른 정치풍자극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02-763-1268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