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론스타, 외환은행 HSBC에 매각 합의 파장
제일-한미 등 매각때마다 외국자본 ‘먹튀’ 논란
국내자본은 제도에 손발 묶여… “역차별” 주장도
오랜 전통과 탄탄한 고객 기반을 보유한 국내 은행이 실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외국계 자본에 팔린 뒤 매입자 측에 엄청난 차익을 안겨 주는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계 사모(私募) 펀드인 론스타가 3일 외환은행 보유 지분 전량을 HSBC에 매각하는 데 전격 합의한 것을 계기로 국내 은행의 졸속 매각에 대해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다.
본보 4일자 A1, 5면 참조
▶HSBC, 외환銀 론스타 지분 인수 합의
▶HSBC-론스타 의기투합 금융당국-국내銀 허찔러
전문가들은 정부나 외국자본 외에는 현실적으로 국내 은행을 소유할 수 없게 만든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국내 금융시장 여건에서 타당한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매각 일정을 미리 정한 뒤 시한에 쫓겨 헐값 매각을 자초한 금융당국의 어설픈 매각 기법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국내 은행 사고팔아 배불린 외국 자본
미국계 뉴브릿지캐피탈과 칼라일펀드가 각각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팔아 거액을 번 데 이어 론스타도 이번 외환은행 매각 계약이 성사되면 투자한 지 4년여 만에 5조 원 이상의 차익을 챙기게 된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릿지캐피탈은 2000년 1월 제일은행의 지분 48.56%를 인수한 후 5년 뒤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SC) 은행에 되팔아 1조1510억 원의 차익을 거머쥐었다. 주당 5000원씩 약 5000억 원에 사들인 제일은행을 2005년 1월 주당 1만6510원씩 1조6510억 원에 팔아 최초 투자자금의 두 배 이상을 건진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당시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긴 했지만 단기 투기성 자본을 대형 은행 인수자로 선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미국계 칼라일펀드도 2000년 11월 한미은행 지분 40.1%를 4447억 원에 인수한 뒤 우선주 매입(458억 원) 등을 거쳐 2004년 5월 씨티은행에 1조1505억 원에 매각해 6600억 원을 벌어들였다.
HSBC와의 외환은행 매각 계약이 성사되면 론스타가 챙기는 돈은 무려 5조 원이 넘는다.
○ 왜 한국은 ‘외국계 잔치판’ 만들고 있나
HSBC와 론스타 간의 계약이 알려지자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국내 은행들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해당 은행들은 인수에 필요한 자금력을 충분히 갖추고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매각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협상을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의 매각 작업은 대부분 시한이 촉박한 상태에서 급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국내 자본은 암묵적으로 역차별을 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새 주인을 찾던 부실 은행들은 국내에서 인수자로 나설 만한 자본이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갔다. 금융당국의 애매모호한 지침과 제도적 제약 탓에 국내 자본이 적극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할 당시에는 ‘팔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정부가 지금은 외환은행의 법적 소송을 통해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라며 “정부는 산업자본에 대한 규제 관행을 버리고 국내외 자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금산분리 완화 논란 거세질 듯
외국자본이라고 해서 국내 투자를 적대시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날뿐더러 국내 금융산업 발전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론스타가 차익을 챙긴 것도 국내 자본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금융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포착하고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곤란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김경수 교수는 “미국 유타 주 등 4개 주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금산분리는 규제냐 아니냐의 차원을 넘어 한국 경제의 장기적 발전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은 국내 자본의 참여를 봉쇄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문제가 아니라 당국을 무시한 HSBC가 잘못”이라며 “법원 판결이 나면 국내 은행들도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