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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수다 - 인터넷 클릭의 힘… 정치에 눈이 ‘번쩍’

입력 | 2007-07-06 03:00:00

여성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다. 많은 여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올해 말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의 표심을 잡기 위해 다채로운 공약을 내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스포츠센터 휴게실에서 이 센터 회원인 김선주(42·주부) 씨가 다른 주부들과 한창 얘기에 열중하고 있다. 대화 주제는 올 연말 대통령선거.

“이번에는 꼭 ○○○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해. 그래야 우리 애 아빠 사업이 좀 풀리지 않겠어?”

“신문 보니까 ○○○ 후보가 문제가 있다고 시끄럽던데….”

다른 주부도 한마디 거든다. “다 필요 없어. 나는 노후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사람한테 한 표 찍을 거야. 그래야 여기 나와서 운동도 계속하고 다른 엄마들 얼굴도 계속 보지.”

김 씨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스포츠센터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던 후보들의 부동산 세금 공약 문제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다.

남편이 귀가한 뒤 저녁 식탁에서 자녀의 학원 문제로 이야기하던 부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교육정책으로 옮아갔다. “교육이 이 모양이니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하는 애들만 불쌍하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교육 좀 확 바꿔야 돼” 하면서 어떤 대선주자들의 교육정책이 좋은지 품평을 하기도 했다. TV에서도 선거 얘기가 흘러나왔다.

○ 아파트는 정보 교류의 장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 유권자의 역할에도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은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적고, 정치 참여도가 낮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여성 표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아파트는 여성 유권자의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는 곳이다. 아파트는 다양한 정보가 활발히 생산되고 소비되는 공간으로, 바로 그 중심에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아파트라는 생활공간을 중심으로 주부들은 함께 운동하고, 밥 먹고, 학부모 모임에 가는 공동 주거문화를 만들어 간다”면서 “아파트를 둘러싼 공간이 주부들에게 새로운 정보 유통지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파트가 주요 생활공간으로 등장하면서 여성의 정치적 의견 교환도 손쉬워졌다.

주부 김영애(34·경기 고양시 탄현동) 씨는 “주부들이 만나면 맛집이나 강아지 키우는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살림 걱정 하다 보면 자연히 얘기는 나라 걱정, 대통령선거로 옮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 언론과 친한 여성이 정치의식도 강하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문을 읽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주부가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기태(신문방송학) 호남대 교수는 “예전에는 주부들이 사회 돌아가는 일을 주로 남편에게서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요즘은 신문 안 읽거나 인터넷 포털 뉴스 안 보는 주부가 없지 않느냐”며 “재테크나 교육 같은 생활형 이슈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정모(49·서울 노원구 중계동) 씨는 “요즘은 정치 가십거리 같은 소식은 인터넷 댓글까지 샅샅이 읽는 아내에게서 많이 전해 듣는다”면서 “아내가 아는 것이 많아지니까 정치적 이슈에 관한 주장도 뚜렷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방정치 활성화도 여성 정치화 한몫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여성 유권자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2006년 지방의회 여성 의원은 전체 3621명 중 14.5%인 525명으로 2002년 3.4%에 비하면 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아파트 반장, 통장, 부녀회장 등을 하다 자치단체 의원으로 출마하는 경우도 많다.

주변에서 정치에 뛰어드는 여성을 보는 것이 정치 참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웃 주부가 지방의회에 출마하거나, 지방의회 모니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결코 나와 무관한 영역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김혜원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기던 정치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여성이 유권자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완정 사외기자 tyra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