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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佛로 간 조선의 무희…신경숙의 역사 상상력

입력 | 2007-06-02 02:55:00


◇리진/신경숙 지음/전 2권·296쪽, 360쪽·각 권 9800원·문학동네

2대 프랑스 공사 이폴리트 프랑댕이 쓴 ‘프랑스 외교관이 본 개화기 조선’이라는 책에 한 조선 무희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외교관이 무희에게 반해 프랑스 파리로 데려갔다는 내용이다. 한 쪽 반 정도의 짧은 기록에 작가 신경숙(44) 씨가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신 씨의 새 소설 ‘리진’은 그 무희의 이야기다. 현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써 온 신 씨에게 조선이라는 ‘옛날 얘기’는 새로운 도전이다. 작가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 보려고 했던 주인공의 심리는 현대인과 비슷하다”면서, 역사소설이지만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기나인으로 궁에 들어가 무희로 자라난 리진. 초대 프랑스 대리공사로 파견된 콜랭 드 플랑시가 리진에게 한눈에 반하고, 리진과 함께 살게 해 달라고 왕에게 청한다. 왕의 허락을 받고 플랑시와 프랑스로 간 리진은 근대 서양문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춤을 추던 무희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리진. 그러나 유산의 슬픔에 고국에 대한 향수병이 겹치고, 자신에 대한 플랑시의 열정마저 잦아들자 더는 프랑스에 머물 수 없게 된다.

시적인 문체로 잘 알려진 작가답게, 새 소설의 문장도 세공을 하듯 섬세하다. 그러면서도 매우 속도감 있게 읽힌다. “어느 시대이든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무슨 이야기를 써도 인간적인 삶은 어떤 것인가에 시선이 가게 되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주체적인 삶에 대한 리진의 열망은 현대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라는 국가적 사건의 충격을, 어머니를 잃은 것 같은 슬픔에 몸부림치는 리진의 고통에 비추어 묘사하는 부분은 낯선 감동을 준다. “공적인 것도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화하게 하는”(평론가 서영채)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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