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심리다. ‘위기다’ ‘파탄이다’ 하니까 투자할 사람 투자 안 하고, 소비할 사람 소비 안 하고, 경제가 더 나빠지지 않겠느냐.”
지난달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언론이 한국 경제를 과도하게 평가 절하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원론적으로 보면 이 같은 인식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언론학계에서도 신문이나 방송이 현재의 경기를 나쁘게 보도하면 실제로 경기가 안 좋아지는 ‘미디어 멜로디’ 효과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중하고 책임 있는 보도가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현 정부에서는 경기 부진의 책임을 언론이 뒤집어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본보가 12일 보도한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이완수, 뉴스·여론·현실 그리고 대통령 리더십의 역동적 의제 설정 과정)에 따르면 경기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부정적인 보도를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경기선행지수처럼 미래의 경기를 수치로 보여 주는 통계청 발표 자료도 언론의 보도 방향과 기사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이는 현 정부 들어 나타난 독특한 현상입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언론과 국민의 경제 인식이 서로 영향을 주는 순환적 구조였지만 현 정부에서는 불황 심리가 부정적 보도를 유발하고 다시 경기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툭하면 ‘언론 탓’을 하며 경기 부진의 책임을 떠넘기려 애썼습니다. 국민도 이 같은 근거 없는 비난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현 정부 들어 연간 평균 성장률은 4.2%에 그쳤습니다.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잠재성장률(5%로 추정)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매년 8조 원 안팎을 손해 본 셈입니다.
차라리 이 책임이 언론 때문이라면 좋겠습니다. 몇몇 언론의 보도 태도만 바꾸면 되니까요. 하지만 불행히도 논문이 보여 준 것처럼 언론은 ‘감시와 견제’에 충실했을 뿐 경기 부진의 책임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요즘 재계는 올해 대통령선거를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4년’을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젠 대통령도 정부의 책임을 겸허히 수용하고 진정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섰으면 합니다. 그게 남은 1년이라도 잘 마무리하는 방법입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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