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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의식? DJ측근 다수 포함, 여론 의식? 盧측근 일부 제외

입력 | 2007-02-10 02:54:00

9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특별사면의 배경과 대상자를 선정한 기준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정부는 9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과거의 범죄로 처벌받은 경제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해 일자리 창출 등에 매진하도록 하기 위한 사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선거사범과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 정치권 인사가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이 실시한 이전의 6차례 특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면’이 아니냐는 견해도 적지 않다.

▽“경제 살리기 사면”=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활동을 하다 죄를 지은 사람을 사면해 다시 활동할 수 있게 해야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사면 배경을 설명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됐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도 높아진 만큼 분식회계 등 과거의 관행적 구조적 부패구조 때문에 생긴 범죄로 처벌을 받은 기업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여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경영인과 중소기업인들이 경제 일선으로 복귀함으로써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경제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사면된 160명의 경제인 중 전문경영인이 42명, 중소기업인 및 영세상공인이 109명이며 대기업 오너는 9명에 불과하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약속 뒤집은 정치적 사면’=정부는 “17대 대선을 앞두고 깨끗한 정치문화 확립을 위해 정치인 사면은 가급적 지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지만 상당수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됐다. 이날 정부가 배포한 자료에는 정치인이 7명뿐이지만 심완구 전 울산시장, 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 권해옥 전 주공 사장 등 공직자로 분류된 37명 중 상당수는 정치권 인사다.

더욱이 16대 대선 사범 223명이 포함된 것은 정치 개혁 의지와 상반된 조치라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후보 시절 “무분별한 사면을 하지 않을 것” “사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 등을 공약했지만 2003년 4월 첫 특사를 제외하고는 이후 5차례의 특사 때마다 선거법 위반 사범, 불법대선자금 사건이나 대북송금 사건에 관련된 정치인들이 포함됐다. 특히 지난해 광복절 특사에는 안희정 씨, 신계륜 전 의원 등 노 대통령의 측근이 대거 포함돼 ‘측근 살리기 사면’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 중의 하나로 정치 개혁과 돈 안 드는 선거 풍토 조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번 사면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대선자금 비리와 연루된 사람들뿐 아니라 선거 사범 223명을 사면한 것은 정치 개혁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설훈 전 의원 등 노 대통령과 가까운 정치인들을 사면한 것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는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박연차 태광그룹 회장 등을 이번 사면에서 제외한 것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 궁여지책일 뿐 이들도 올 광복절에 사면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면의 또 다른 속뜻은?=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 등 이른바 동교동계 인사들을 대부분 사면한 것은 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껄끄러워진 김 전 대통령과의 화해 및 호남 민심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분당된 상황에서 노 대통령 의도대로 범여권의 ‘재통합’을 통한 정권 재창출을 하기 위해서는 김 전 대통령 및 호남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전 비서실장과 권 전 고문을 복권시키지는 않은 것에서 노 대통령의 속내가 드러난다는 얘기도 나왔다. 정치력이 만만치 않은 두 사람이 정치를 재개해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을 경계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두 사람의 정치 행보는 열린우리당 중심의 통합을 염두에 둔 노 대통령의 속내와 배치되는 데다 자칫 노 대통령의 정치적 주도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도 이번에 포함된 데 대해 노 대통령이 대선의 해를 맞아 자신과 참여정부를 매섭게 비판해온 김 전 대통령에게도 화해 제스처를 던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참여정부의 주요 사면 일지일시대상자 수(명)주요 인물비고2003.4.301418민족민주혁명당 사건 관련자 김경환 씨, 하영옥 씨, 중부지역당 사건 황인오 씨 등 사면대상자 전원이 공안, 노동 사건 등 시국 사범2003.8.1515만1122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 홍인길 전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 등2000년 총선 사범 공무원 12만5164명 포함2004.5.26352임동원 전 국정원장,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대북송금 관련자 6명 포함2005.5.1531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김동진 현대차그룹 부회장 등불법대선자금 사건 관련자 12명 포함2005.8.15422만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 이상수 전 의원역대 4번째 대규모2002년 대선 관련 정치인 대부분 포함2006.8.15142안희정 씨, 신계륜 전 의원, 여택수 전 대통령행정관 등노무현 대통령 측근 대거 포함2007.2.12434김홍일 전 의원, 김현철 씨,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선거사범 비리정치인 다수 포함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野 “기획 사면” 일제히 비난

야당들은 9일 정부가 정치인과 경제인 등 434명에 대한 사면 복권을 결정한 데 대해 “사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기획사면”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9일 현안 브리핑에서 “대선이 있는 해에 사면권을 남발하는 것은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남용을 넘어 오용이고 불법 사용”이라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일부 정치인에 대해서는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시행되었고, 사면의 요건에 해당되지도 않는데 사면권이 행사되었다”며 “이런 사면은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기현 제1정조위원장도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돼 처벌받은 사람을 현 정권 내에 사면한 것은 사실상 당사자인 노 대통령이 자신의 죄를 자신이 용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논평에서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을 위한 특별사면이라고 내세웠으나 외환위기를 가져온 주범들에 대한 면죄부이며,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한 정략적 사면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번 사면은 임기를 1년 남긴 막판 정권이 사면권을 남발한 것으로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만 법적 혜택이 집중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 사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민 법 감정을 향한 ‘거침없는 하이킥’”이라고 비난했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사면▼

경제인 160명

공직자 37명

정치인 7명

16대 대선 선거사범 223명

경인여대 학내 분규사범 7명

주요 특별사면 대상자경제계고병우 전 동아건설산업 회장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김근무 전 한솔텔레콤 대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김석준 쌍용건설 대표 〃김연배 한화그룹 부회장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총괄사장 〃김태형 전 한신공영 회장 〃명호근 전 쌍용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 〃박용만 전 두산그룹 부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창호 전 갑을그룹 회장 〃백영기 전 동국무역그룹 회장 〃윤재철 전 한솔텔레콤 대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경영자 〃이순목 전 우방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형집행면제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장세주 동국제강 회장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정몽훈 전 성우전자 회장특별복권최용선 전 한신공영 회장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특별복권

정치인 및 공직자-권영해 전 안기부장 특별감형심완구 전 울산시장 형집행면제 특별사면김현철 씨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형집행면제 특별사면권노갑 전 의원 〃 김봉호 전 국회부의장 특별복권김홍일 전 의원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설훈 전 의원 〃이호웅 전 의원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문성근 씨(영화배우) 특별복권강신성일 전 의원 형집행면제 특별사면서상목 전 의원 특별복권이상재 전 의원 〃권해옥 전 주공 사장 특별감형김용채 전 건설교통부 장관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

▼제외▼

사면대상에서 제외된 주요 인사경제인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 회장,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 박원양 삼미 회장, 문병욱 썬앤문 회장, 정치권인사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유종근 전 전북지사, 안병엽 전 국회의원,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경제계 “활력 회복에 도움”

경제계는 9일 특별사면 대상에 경제인이 대거 포함된 데 대해 “경제 활력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경제계가 그동안 사면을 희망해 온 일부 주요 인사가 빠진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이날 공동 논평을 통해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아 내려진 기업인 사면조치가 기업의 사기 진작과 경제 활력의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이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경제5단체는 “사면 복권된 기업인들이 심기일전하여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헌신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앞으로 준법경영에 더 힘쓰고 투자와 경영활동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면에 포함되지 못한 기업인들에게도 이른 시일 안에 사면이 이뤄져 이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기를 바란다”며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등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데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현석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상징성이 큰 주요 기업인이 더 많이 사면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승철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은 “김우중 전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으로서, 전경련 회장으로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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