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서홍관 시인·국립암센터 의사
To:젊은 의학도들
따뜻한 가슴을 지닌 좋은 의사 꿈꿉니까? 크로닌의 ‘성채’가 길잡이가 돼줄겁니다
요즘 의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것은 물론 아니다. 오래된 일이긴 하나 적성이나 인성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고교 성적만으로 의대 지망 여부가 결정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면 성경이나 불경, 논어, 노자, 장자가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젊은 날에 한번쯤 좋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환자들의 투병기를 먼저 권하고 싶다.
의사는 진료실이나 입원실, 수술실에서 환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의사는 그 환자가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며,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치료비를 대기 위해 어떤 적금을 깼거나 돈을 빌렸을지도 모르며, 그가 입원치료를 받기 위해 직장을 쉬거나 사업체 문을 닫고 왔을지도 모르며, 남편을 간호하기 위해 다섯 살짜리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눈물을 훔치면서 병실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환자를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가진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불필요한 시술이나 검사를 할 리도 만무하고, 질병의 경과를 자꾸 물어본다고 화를 내지도 않을 것이다. 투병문학상 수상집 ‘햇빛냄새’는 의사로 하여금 환자를 하나의 질병으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바라보게 해 준다.
그리고 ‘재미있는 의학의 역사’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1000년 전 의사들이 골머리를 앓던 천연두 이질 홍역 결핵 등의 질병은 사라지거나 보기 드문 병이 되었고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암과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심장질환들은 예전엔 매우 드물었지만 흔한 질병이 되었다.
자동차의 발달은 교통사고를 새로 발생시키고, 산업의 발전은 예전에 인간이 다루지 않던 유기용제와 화학물질을 사용하게 하면서 직업병과 산업재해를 발생시켰다. 또한 수많은 환경오염은 새로운 질병을 일으킨다.
질병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료제도도 변하고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질병에 대한 현재의 개념이나 치료법, 의료제도가 모두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거시적 시선을 가질 때라야만 우리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미래의 의료를 전망할 수 있다.
조지프 크로닌의 ‘성채’는 실제로 의사이자 소설가였던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때 묻지 않은 의사인 주인공이 탄광촌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런던으로 와서 개업의가 되면서 겪는 숱한 곡절을 담고 있다. 의사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의사라면 모름지기 10년에 한 번씩은 이 소설을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한다면 10년마다 예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대목들에 주목하면서 읽게 될 것이고, 전에 공감하지 않았던 대목에서 공감을 표시하게 될 것이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암병동’은 그가 유형생활 중 3년간 타슈켄트의 한 병원에 입원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수십 년 전 러시아의 병원이 지금 우리나라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사가 등장하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에리히 레마르크의 ‘개선문’ 같은 소설을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