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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이기홍]워싱턴의 이구동성

입력 | 2007-01-25 03:00:00


워싱턴에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화려해 보였던 특파원 생활에도 고충은 있는 것 같다. 오전 서너 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시차가 14시간인데 서울의 신문 제작 시간에 맞춰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낮에는 낮대로 미국 사회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워싱턴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그런 개인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포드 자동차 딜러인 미국인 친구에게 “현대나 기아 차는 리세일 밸류(되팔 때 가격)가 안 좋으니 도요타나 혼다를 사라”는 충고를 들으면 괜히 심란해진다.

기사가 나간 뒤 한국에서 ‘엉뚱한’ 반응이 전해질 때도 안타깝다. 서울과 워싱턴 간에 감지되는 뚜렷한 온도차, 비판적 기류를 전해 주면 일각에선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렇다” “친미 수구세력의 발목 잡기”라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6개월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한미동맹 위기→전시작전통제권 단독 행사→북한 핵실험→6자회담 재개’로 숨 가쁘게 이어져 온 한반도 이슈에 대해 미국 내부에선 ‘각양각색(各樣各色)’의 반응이 나온 적도 있었고, ‘이구동성(異口同聲)’이 터져 나온 적도 있었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북핵 정책에 대해선 미국 내 어떤 싱크탱크, 어떤 이념의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반응이 크게 달랐다.

하지만 그 밖의 이슈들에 대한 반응은 거의 이구동성이라 할 만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및 핵실험 당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선, 완곡한 화법이냐 직설법이냐의 차이를 제외하면 미국 내 보수 중도 진보 모두 예상보다 훨씬 비판적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시작전권을 단독행사로 바꾸는 데 대해선 심지어 한국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많았다. 사석에서라도 결코 대통령을 비판하는 법이 없는 그들이지만 때론 “한미연합사만큼 효율적인 시스템도 없는데” “전시작전권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갖고 있는 게 아닌데”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런 의견을 기사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귀하의 손발인 일선 공무원들의 솔직한 의견을 익명으로 들어 보시라”고 충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 한동안 뜸했던 미국 내의 이구동성이 요즘 ‘쇠고기 뼛조각’ 문제를 놓고 다시 형성된 듯하다. “미국 정부가 일부 업자의 이익을 한미관계보다 앞에 놓아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지한파 인사들조차 한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선 “설득력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비유하는 촌평도 나왔다. X선으로 수입물량 전체를 샅샅이 뒤져서 손톱만 한 뼛조각 하나라도 나오면 전량 반품하는 것은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만 베어 가라’는 판결과 같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9700만 마리의 소를 키우는 미국에서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린 소가 2마리 발견됐는데 한국은 연간 1000마리만 샘플 조사한다. 한국도 예전에 육골분 사료를 수입해 쓰지 않았느냐”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가 싫으면 아예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게 당당한 자세 아니냐….”

물론 기자는 미국 내 의견이 이구동성이든 각양각색이든, 우호적이든 비판적이든 그대로 전달해 주면 된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반갑지 않은 소리가 이구동성으로 들려올 땐 한국의 집권세력과 이른바 진보세력도 미국이 왜 그러는지 한번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주길 바라는 기대가 남아 있기에 자꾸 마음이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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