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수원 오염 우려와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하이닉스반도체의 경기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수도권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선거 공약인 ‘대(大)수도론’을 강조하며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풀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거부는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비수도권에서는 “대수도론의 핵심은 수도권 규제완화이며 이는 ‘지방 죽이기’로 연결된다”고 반박한다. 김문수 지사의 주장과 김완주 전북지사의 반론을 통해 양측 주장을 소개한다.》
▼찬 - 글로벌 경쟁시대 규제는 범죄▼
미국의 정치이론가이자 작가였던 토머스 페인은 “정부는 최상의 상태에서도 필요악(必要惡)일 뿐이며 최악의 상태에서는 참을 수 없는 악(惡)”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숨진 유명한 시장자유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은 심지어 정부를 “도둑”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최근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을 놓고 국가적인 이슈로 떠오른 수도권 규제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참을 수 없는 악(惡) 같다는 생각도 들고, 도둑 같다는 생각도 든다.
수도권에는 과밀 해소를 위해 공장도 학교도 못 짓는다. 수도권 사람들은 일자리와 교육을 포기해야 하고 온갖 규제를 다 받아야 한다. 현재 이천시의 인구는 20만 명도 채 안 된다. 인구밀도는 421명에 불과하다. 반면 청주시는 인구 63만 명에 인구밀도는 이천의 10배에 가까운 4121명이나 된다. 어느 도시가 더 과밀한가. 낙후지역 이천시가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울과 똑같은 규제를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수도권 규제를 없애자’는 요구는 수도권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도 글로벌 경쟁을 위해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없앴다. 오히려 수도권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불꽃 튀는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급격히 성장하는 외국 대도시권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덩치가 필요하다. 필자가 ‘대(大)수도론’을 들고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본이 10년 동안의 장기불황을 벗어나 비상하게 된 것도 수도권 규제를 철폐한 덕분이다. 두 손 두 발을 다 묶인 한국 수도권이 연 10% 이상 고속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의 베이징(北京)권과 상하이(上海)권, 수도권 규제를 벗어던진 일본의 도쿄(東京)권과 경쟁이 될 리 없다. 시간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고사하고 아시아 후발주자에 뒤처질 날도 머지않았다.
지금은 국가가 기업을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정부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아니라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구직을 포기한 성인 남성이 100만 명을 넘었고, 대학 나오고도 취직 못하는 젊은이가 수두룩하다.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도 13조5000억 원을 투자해서 6600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9조 원의 수출을 하겠다는 기업을 정부가 앞장서서 가로막고 있다.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다.
하이닉스 공장 증설은 산을 깎아 내고 들판을 갈아엎어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이상한 규제에 묶여 놀고 있는 빈 땅에 지어 올리자는 것이다. 환경 전문가들도 반도체 공장 증설에 따라 배출될 구리 성분이 환경오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고집을 쉽사리 꺾지 않을 태세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참 공허하게 들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쓸 만한 기업이 중국 인도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으로 쉴 새 없이 빠져나간다. 자기를 반겨 주는 국가를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엑소더스’다. 이러다가 하이닉스 공장이 외국으로 떠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미운 오리새끼 취급하는 정부를 믿고 일자리를 만들고 제품을 생산해 외화를 벌어들일 바보는 없다. 정부가 도움은 못 줄망정 훼방꾼은 되지 말아야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
▼반 - 국토 균형발전 어떡하라고…▼
어떻게 봐도 대한민국은 ‘깝깝하다’. 전라도에서는 ‘많이 답답하다’는 말을 ‘깝깝하다’고 한다. 교통과 인터넷이 발달해도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한국이 깝깝한 근본 원인은 수도권이 과잉 성장하고 지방이 불균형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한국이 공업화와 수출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추구할 때 수도권의 성장은 필연이었다. 모두가 인정했다. 큰아들 하나라도 잘돼야 집안을 일으키고 동생들 학비라도 댈 수 있었던 집안 사정과 똑같았다.
균형 발전과 분권은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개발도상국가가 아니다. 송곳처럼 한 곳에 모든 화력을 집중해서 구멍 하나 뚫는 것이 목표인 나라가 아니다. 균형 발전은 한국이 선진 사회로 가는 길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런 마당에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들으면 정말로 ‘깝깝’해진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제창하고 서울시가 화답한 ‘대수도론’은 의미 있는 정책일 수 있다. 지난해 말 서울시와 경기도가 맺은 버스교통체계 개편과 대기오염, 수질 개선에 대한 협약은 지방자치의 모범이었다. 같은 광역단체장으로서 김 지사의 열정과 추진력이 참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수도론과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거듭된 주장은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에 중대한 오류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감행한 4대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증설, 수도권 군부대 인근 지역 규제 완화, 김 지사의 공격적인 규제 완화 주장을 접하면서 나는 자꾸 불안해진다. 또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197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말이 화두의 단계를 넘어서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다. 너무 강한 서울과 너무 약한 지방보다는 ‘특색 있는 서울과 지방’이어야 하고 모두가 고르게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과 수도권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경쟁력의 핵심은 쾌적함이다. 만성적인 교통 체증, 매캐한 대기, 믿을 수 없는 물, 옹색한 건물과 공간이 수도권의 경쟁력일 수는 없다. 물론 지방이 완전히 준비를 갖추지는 못했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국민의 인내가 꼭 필요하다. 혁신도시를 통한 공공기관 이전은 지방의 질적 수준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균형 발전은 결국 서울 등 수도권을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시키는 발판이 된다.
김 지사는 수도권 규제 완화와 같은 정책을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지방의 표를 얻기 위해 수도권을 묶는다’는 김 지사의 관점에는 정말 동의하기 어렵다. 마찬가지 논리로 수도권의 표를 얻기 위해 지방을 방치하는 정책은 옳은 일인가 되묻고 싶다.
김 지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경기도의 기초와 한국의 기초가 궁극적으로는 다를 수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기초에 대한 관점이 충돌한다. 나는 수도권 규제가 한국의 기초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도권과 지방 모두를 ‘깝깝하게’ 하는 과도한 집중과 불균형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깝깝함’을 덜어내는 첫 번째 걸음이다.
김완주 전북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