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학생들은 옛 동독의 공산독재체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교과서에 충실한 학생들이라면 옛 서독과 별 차이가 없는 ‘민주주의 체제’로 인식할 것이라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신호에서 전했다.
이 같은 내용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대 교과서연구소가 최근 독일 고등학교 사회 및 역사교과서 81종을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연구에 따르면 고교 교과서 중 절반은 동독 공산체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악명 높은 비밀정보기관 슈타지의 만행과 수만 명의 반체제 희생자를 다룬 교과서는 일부에 그쳤다.
반면 여러 교과서에 동독 공산 치하의 생활이 서독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처럼 묘사됐다. 심지어 2003년부터 동독 지역 브란덴부르크 주에서 채택된 한 교과서의 경우 동독 체제를 ‘인민의 광범위한 참여가 보장된 민주집중제’로 묘사했다.
하이케 메칭 브라운슈바이크대 교수는 “법의 지배(서독)와 전체주의 체제(동독)로 대변되는 양 체제의 결정적 차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올해는 동독이 지도상에서 사라진 지 17년째 되는 해. 대부분의 청소년이 독일 통일 이후에 태어났다. 따라서 이 같은 교과서의 서술방식이 학생들의 공산주의 인식을 크게 왜곡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우려했다.
이 같은 교과서 왜곡은 부분적으로 동독 공산체제하의 범죄행위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예로 공산체제하의 범죄 때문에 기소된 동독 관리는 거의 없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슈타지 문서관리청장의 말을 인용해 슈타지 전직 요원 1800여 명이 경찰관으로 근무한다고 지난해 12월 보도했다. 최근에는 전직 동독 공산당 및 슈타지 간부들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을 옹호하는 책을 잇달아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뉴스위크는 한발 나아가 동독 공산체제의 범죄에 미온적인 태도가 통일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서독에서 제3세계의 인권에는 관심을 보여도 동독 체제의 비판은 ‘긴장 완화 분위기를 해친다’며 자제해야 했고, 동독을 미화해야 ‘진보적’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지적이다.
“독일 교과서는 나치의 만행을 진지하게 반성해 세계의 호평을 받아왔다. 이제는 공산주의의 어두운 과거와도 진실한 대면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뉴스위크는 권고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