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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국새 글자체-손잡이 당선 21대 옥새전각匠민홍규 씨

입력 | 2007-01-02 03:00:00

홍진환 기자


“국새(國璽) 제작은 일반 인장과 다릅니다. 동양학 서예 조각 회화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자 국가의 혼을 담는 일입니다.”

정부 주최로 지난달 말 열린 새 국새 모형 공모전에서 인문(印文·글씨)과 인뉴(印(뉴,유)·봉황 손잡이) 부문에 모두 당선된 ‘옥새 전각장(옥새장)’ 민홍규(52·사진) 씨는 내년(2008년)부터 국새가 바뀌는 만큼 우리나라 국운도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공모전을 통해 ‘국새 제작 1인자’로 처음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국내에서는 이미 독보적인 옥새 연구와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책 ‘옥새’(2005년 인디북)와 그의 홈페이지(www.kuksae.com)는 옥새에 관한 풍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옥새는 국가 중요문서에 사용하는 인장. 국새는 이 여러 종류의 옥새 중 으뜸으로 현재는 외교문서 및 훈포장 증서 등에 사용한다.

민 옥새장은 1988년 스승인 정기호 선생에게서 ‘21대 옥새 전각장(옥새장·玉璽仗)’을 전수받았다. 옥새장들은 ‘영새부(榮璽h)’라는 7자씩 10줄 총 70자로 이뤄진 노래를 통해 1 대 1로 구전으로만 옥새 제작 기법 등을 전수한다. 가사는 기록하지 않고 공개하지도 않는다. 옥새장은 왕실로부터 인정받은 옥새 제작장인을 말한다.

그는 옥새장 전수를 받은 뒤 세불(世佛)이라는 아호도 받았다. 이전 역대 옥새장도 석불(石佛) 시불(示佛) 토불(吐佛) 등 아호가 있다. 민 옥새장은 “‘불’자는 불교와는 관련 없고 ‘인(人)’과 ‘불(弗·‘아니다’는 뜻)’의 합성어”라며 “옥새를 만들고 임금을 독대할 수 있다고 해서 우쭐대서는 안 되며 자신을 낮추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로 옥새장은 조선시대에 종2품의 고위직으로 임금과 독대가 가능했으며 여러 종류의 옥새를 제작할 때면 임금이 옥새장을 직접 불러 상의했다고 한다. 실제 조선시대에는 왕뿐 아니라 왕비 및 왕세자 등도 나름의 옥새를 사용했다.

‘佛’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1985년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동아미술대전에 출품해 서예 전각 부문에서 입상한 것을 빼고는 자기를 내세우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강호의 고수’였지만 인문에는 33명이 38점을, 인뉴 분야에는 5명이 5점을 내놓은 이번 공모전에서 다른 응모자들과 ‘이름을 가린’ 심사를 통해 정면 승부를 벌였다. 국새는 ‘민족 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남아 당선자가 받을 영예가 크기 때문이다.

인문 작품에서 민 옥새장은 ‘대한민국’ 4자의 마지막 ‘국’자의 받침 ‘ㄱ’을 두 획으로 나눠 쓴 것이 심사위원 10명 전원에게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통 동양사상에서 20획은 ‘파괴’ ‘파멸’을 뜻하고, 21획은 ‘만물이 평안히 자라남’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국새의 이름도 ‘태평새(璽)’라고 붙여 출품했다.

그는 “글씨는 정지된 상태이지만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심사평은 ‘조형미가 뛰어나며 인획의 기운찬 생동함이 국운 융성을 잘 나타냈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진시황 때 ‘전국(傳國)새’, 측천무후 때 ‘측천새’ 등의 이름이 있었다며 우리나라 국새도 ‘태평새’라는 이름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기대했다.

인뉴 분야에는 민 옥새장 등 5명이 5점을 내놓아 수는 많지 않았지만 우수상을 받은 서강 박진환 씨 등 국내 전각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민 옥새장은 “바닥면 가로 세로 9.9cm, 높이 9.9cm인 덩어리에 봉황이 내려앉는 모습을 조각하는 것은 일반 조각가들은 하지 않는 크기여서 참가를 포기한 조각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20여 명의 ‘국새 제작단’을 구성해 1년여간 국새 및 보관함, 인끈(매듭) 등 ‘국새 의전품’을 제작한다. 새 국새는 이르면 내년 2월경부터 대통령 명의의 비준서, 훈장 및 포장증, 고위 공무원 임명장 등에 사용된다.

현재 국새는 한 해 약 1만6000∼1만8000회 사용돼 표면이 닳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앞으로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금 은 구리 아연 등의 합금 재질을 사용하고 제작 과정에서 감리단의 감리도 받게 할 계획이다.

1963년 제작한 국새는 표면 마모가 심해 쓰지 못하게 되고 1999년 새로 제작한 것도 역시 균열이 생기는 등 국새 제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 옥새장은 5세 때부터 한학자인 조부에게서 서예와 회화를 배우고 일본 도쿄대에 유학한 부친에게서 조각을 배웠다. 중학생 때 ‘20대 옥새장’ 정기호 선생 문하에 들어가 서예 옥새 전각 등을 배웠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다닐 때는 단성사 등 서울 시내 극장 간판을 그리기도 했다. 경기 이천시에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고정 수입 없이 서당 운영과 작품 판매 등으로 생활을 꾸려 가고 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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