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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한기흥]북핵 앞에 미사일 자랑하는 난센스

입력 | 2006-10-26 03:00:00


북한의 핵실험으로 국민의 안보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사거리 1000km의 크루즈(순항)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북한 전역뿐 아니라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까지 사정권에 넣을 수 있고, 목표물을 5m 범위 안에서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첨단미사일이라고 한다. 이런 미사일을 이미 개발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정도라고 하니 우리도 ‘미사일 강국’ 반열에 오른 셈이다.

한국은 2001년 1월 17일 체결한 한미 미사일협정과 그해 3월 26일 정식 가입한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따라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다. 그러나 크루즈미사일은 이런 제한을 받지 않는 ‘틈새’다. 그래서 정부는 북한과의 미사일 전력(戰力)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크루즈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왔다.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노고가 많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영 개운하지 않다. 주변 국가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쉬쉬하며 개발해 온 전략미사일의 존재를 굳이 북의 핵실험 직후에 덜컥 공개한 이유가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공개도 국방부나 ADD가 공식 발표한 게 아니라 정부 모처에서 언론에 슬쩍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북의 핵실험으로 국민의 안보 불안감이 커져 가니까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 주려는 의도였겠지만 그렇다고 안도할 수가 없다.

사거리가 1000km로 늘었으면 뭐 하나. 북의 핵무기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비(非)대칭성 때문이다. 첨단 재래식 무기가 아무리 많더라도 핵무기에 의한 선제공격을 억지(抑止)하지 못한다. 상대방이 핵 공격을 할 경우 이쪽도 즉각 핵으로 보복할 수 있어야 억지와 균형이 가능하다. 재래식 무기만으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크루즈미사일의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첩보위성을 비롯한 첨단정보력으로 북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그 효용은 현저히 떨어지고 만다. 목표물을 적시에 정확하게 때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첨단정보장비의 도움은 결국 미국으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기정사실로 굳히는 바람에 한미연합사 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핵이나 미사일 등 전략무기는 상대국으로 하여금 그 존재 여부를 확신할 수 없도록 할 때 효과가 더 큰 법이다. 한국이 크루즈미사일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알 수 없을 때 북이나 주변국들은 더 두려움을 갖게 되고 그만큼 억지효과가 생긴다. 이번 미사일 공개는 이처럼 초보적인 ‘모호성의 원칙’을 스스로 깨 버렸다.

북이 핵실험으로 ‘장군’ 했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굳이 감춰 둔 미사일까지 공개하며 ‘멍군’ 한 것은 전략적 차원에서 현명한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평소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적인 물리력은 가져야 한다”고 말해 왔다. 이번 크루즈미사일도 그중 하나였을 개연성이 높다. 어차피 북의 핵 위협을 상쇄하지 못할 무기라면 ‘비장(秘藏)의 그 무엇’으로 계속 감춰 두는 게 나았다. 공연히 주변국들의 경계심만 키워 놓고 말았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